=====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New York Music Guide] 카네기홀

카네기 홀에 관한 오래된 일화가 있다. (영문 wiki사전에 소개되어 있음).
어떤 사람이 57가 근처(카네기 홀 앞)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를 붙잡고 (그가 누군지를 몰라보고) "카네기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하고 물었단다.

하이페츠의 대답은....
"연습이죠! (Practice!)" 였다고... 

이 일화로 인해, 카네기 홀 홈페이지의 <찾아가는 길(directions)>도 이런 조크로 시작된다.

"(혹자에 의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카네기홀에 가기까지 일생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다른 분들은 아래의 간단한 방법을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While it takes some people a lifetime of practice to get to Carnegie Hall (as the saying goes), others just have to follow these simple directions.)"

음악가에게 카네기 홀 무대에 선다는 것은, 위의 일화처럼 일생의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는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자세히 알고 보면, '카네기 홀'이라는 이름이 거장만이 설 수 있는 무대의 대명사는 아닌 듯 하다.

'카네기 홀'이라는 이름의 건물 아래에는, 총 3개의 공연장이 있다. 메인 홀로 불리는, 카네기 홀 공연장 가운데 가장 큰 이작 스턴 오디토리엄(Isaac Stern Auditorium), 실내악 규모의 연주가 적당할 잔켈 홀(Zankel Hall), 그리고 독주에 적당한 바일 리사이틀 홀(Weill Recital Hall)이 그것이다.
카네기 홀 자체에서 기획해서 올리는 굵직한 공연들이 주로 메인 홀인 스턴 오디토리엄에서 이루어지는데, 자체 기획 공연이 올려지지 않는 날에는 공간들을 외부에 대관해준다. (즉, 예산과 일정이 맞으면, 일생을 연습한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대관할 수 있다는...)
그러니 '카네기 홀'에서 공연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음악가가 예술적으로 '거장'임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음악회를 고를 때, 어떤 이들에 의해 음악회가 기획되었고, 어떤 연주자가 나서게 될 것인지 잘 살펴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이곳에 들리게 될 기회가 온다면, 그냥 카네기 홀 건물, 내부 공연장들만을 구경할 것이 아니라, 이 무대에 서기 위해 최선을 다해온 최고의 연주자들을 만나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스턴 오디토리엄 무대>

 

제일 큰 홀인 스턴 오디토리엄 좌석의 티켓 가격은 13등급으로 나뉘어져 있다. First Tier (1층이 아니라, 무대를 가장 편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첫번째 복층석), 그리고 1층에서는 음향이 가장 좋게 들리는 (앞뒤,좌우의 극단을 제외한) 가운데 자리들(Prime Parquet)이 가격이 제일 높다.
Second Tier는 말 그대로 First Tier보다 또 한 층 위라고 할 수 있는데, Second Tier 가운데에서도 Center과 Side의 가격이 다르다. 왜냐, 측면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려면 고개가 아프니까. 비교적 무대와 가까워서, 연주자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마치 특별석에 앉은 것 처럼 뽀대가 나지 않을지 기대하게 되는데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가 앉았던 좌석 정도의 위치를 상상하시면 되겠다.) 보통 2시간 가량 이어지는 음악회에서 한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중간에 인터미션(공연 중간 쉬는 시간)이 있기는 하지만...^^


 

<층층이 쌓아 올려진 객석>


이 위로 올라가면, Dress Circle이라 이름 붙여져 있는 좌석 한 층이 더 있고, 그 위에 Balcony라 불리는 좌석 한 층이 더 있다. 맨 아랫층을 1층이라고 보면, 5개층이 있는 셈. Balcony 좌석도 Center와 그렇지 않은 좌석으로 나뉘고, 각층마다 건물의 구조상 무대 전체를 볼 수 없는 좌석이 몇 개씩 있다. 일명 Partial View 좌석. 조금 답답하기는 하지만, 가격이 현격하게 저렴하므로, 음악만 듣겠다는 각오라면 고려해볼 만 하다.


 

<Center Balcony에서 내려다 본 무대>


때때로 학생들에게는 학생 할인 티켓을 따로 파는데, 이 정보를 얻으려면 카네기 홀 이메일을 구독하면 된다. 보통 학생 좌석은 10불에서 15불 정도. (한국에서 공연표 구입에 학생할인이 없는 것이 너무 유감이다.)
학생표를 구입하면 자리를 주로 Dress Circle의 뒷자리를 주는 경향이 있으나, 싼 표라고 해서 시야가 가리는 것도 아니고, 음향도 나쁘지 않다. 최근 수 년 사이에 음향기술이 어찌나 좋아졌는지, 저 큰 홀의 맨 뒷줄에 앉아 있어도 피아노 독주자의 피아노 소리까지 섬세하게 잘 들린다.

문제는 음향이 아니라, 좌석의 크기.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인들 평균신장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의자와 의자 사이의 다리를 둘 간격이 너무 좁아서, 보통 체격의 사람도 의자 사이에 낑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건 비단 카네기 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사가 좀 있는 뉴욕의 공연장들(뮤지컬 극장들 포함)을 가보면 하나 같이 좌석 사이가 너무 좁다. 옛날 사람들이 체구가 작았던 것일까, 아니면, 수익이 목적인 공연장의 특성상, 최대로 많은 좌석을 만들어 넣다보니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튼, 음악적인 이유와 전혀 상관없이, 인터미션이 왜 필요한지 실감하게 만들어 주는 공간 배치다.ㅋㅋ

스턴 오디토리엄 말고, 잔켈 홀, 바일 홀도 좌석이 좁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인파에 치이지 않고,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바일 홀은, 마치 학교의 작은 강당 같기도 하고, 아니면 서양 귀족의 집 안에 만들어 놓은 전용 공연장 같기도 하고 참 아담하다.
잔켈 홀에서는 원전악기 연주나 현대음악 연주 같이 실험적인 공연들이 많이 이루어지는 듯 하다. 아쉬운 점은, 잔켈 홀이 건물의 지하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근처의 지하로 통과하는 지하철의 진동/소음이 살짝씩 느껴진다는 것. 현대의 기술로도 극복이 안 되는 부분인가 보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카네기 홀 주변도 둘러볼 곳이 많다. 원래, 카네기홀의 바로 뒤, 56가에는 Patelson's라는 악보 가게가 있었는데 (한국에서 음악전공자들에게 '대한음악사' 같은 존재의 음악 서점), 제작년에 문을 닫게 되었다. 음악가들에게 중요했던 명소 한 곳은 사라졌지만, 주변에는 여전히 둘러볼만 한 음악가게(?)들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아노 가게들이다.

 


                              <카네기 홀 윗 골목 (58가, 7번가와 브로드웨이 사이)의 피아노 가게들>


물론, 카네기 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슈타인웨이 홀(Steinway Hall)이 있고 (57가, 6번가와 7번가 사이, 6번가에 더 인접), 그 곳에 피아노 중에서는 최고로 인정받는 슈타인웨이 악기들이 대규모로 전시되어 있지만, 이곳 샵들에서도 다양한 메이커들의 아름다운 피아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악기로서의 피아노, 혹은 가구로서의 피아노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들에게 이 거리는 지나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장소일 게다. 나의 한 친구는, 카네기 홀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네기홀에서 만날 때 이 거리를 지나쳐가기 위해 조금 먼 지하철 역에서 내려 일부러 걸어오곤 한다고 한다. 자신의 집 거실에 저런 피아노를 갖추게 될 미래를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고...

 
 

 

우리에게 그런 날이 언제 올 지 모르지만, 피아노와 옐로우 캡이 겹친 진귀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정도의 행운과 즐거움은 이 거리에서 가능하다. 

 

p.s. 카네기홀의 옛날 모습, 그 무대 위에 섰던 거장들(하이페츠 포함)의 실연 장면들이 담긴 흥미로운 영화가 있다. 제목이 <Carnegie Hall>. 대학원 시절 은사님께서 처음 소개해주셨던 이 영화는, 1947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픽션이 가미된 드라마인데, 이야기 전개 사이사이에, 실제 연주자들의 명연주 장면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묶여져 있다. 나중에 <Films on Musicians>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