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Music Story] 19세기판 <너의 결혼식>: 슈만과 말러의 가곡

12월의 문턱에 접어들고 보니, 나무에 걸린 단풍잎보다 길가에 깔린 낙엽이 더 많음이 느껴진다.


 

불안한 한반도 정세에 대한 뉴스를 많이 접하다보니, 이런 시기에 음악이나 듣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들지만...... 가을, 특히나 늦가을의 저녁은 음악과 함께 상념에 잠기기에 참 좋은 때다.

이 계절에는 후기 낭만 시대의 심포니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왔는데, 올해는 성악곡을 더 자주 찾게 된다. (늦가을에는 왠지 발라드가 더 듣고 싶어지게 되는 느낌과 비슷)

서양 가곡은 사실, 들을 때 가사의 의미가 확 마음에 와서 꽂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잘 못 알아듣는 음악'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번이라도 가사를 들여다보면서,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어볼 여유를 가져 본다면, 이 가곡들이 왜 시대를 초월해서 사랑받고 연주되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볼 수 있다. (한글로 가사의 번역이 잘 되어있지 않은 것이 아쉽다.)

최근에 두 남자 성악가의 독창회에서 각각 슈만, 말러의 곡들이 연주되는 것을 들었다. 많은 수 예술가곡의 주제 역시, 대중가요와 다를 바 없이 '사랑이 주는 기쁨과 슬픔'으로 요약될 것 같다. (시간,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의 주요 주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주제를 '기쁨'과 '슬픔'으로 나눠본다면, 아무래도 '슬픔'을 노래한 것이 더욱 더 심금을 울린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노래는 성악가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다보니, 더욱 직접적으로 듣는 이의 감성에 어필하는 것 같다. 

음악회에서 들었던 곡들 가운데, 왠지 더욱 슬픈, 주제적으로 통하는 두 개의 노래가 있었다. 슈만의 가곡집 <리더크라이스 (Liederkreis)> op.39 중의 한 곡인 <성(城) 위에서 (Auf einer Burg)>, 그리고 말러의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중의 한 곡인 <그녀의 결혼식 (Wenn mein Schatz Hochzeit macht)>이다. 두 곡 모두 19세기에 만들어진, 시기적으로는 대략 50년 차이가 나는 곡들이다.

 


 슈만, <성 위에서>


(시의 감흥을 살리는 번역이 어려워 내용을 서술형으로 요약해보자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은 중세, 한 남자는 성을 지키고 있다. 하늘에는 비가 내리고, 숲은 바람을 따라 스산하에 움직인다.(1연) 성 안에서, 그는 수세기를 어두운 침묵의 방에 갇혀있는 듯 슬픔의 시간을 보낸다.(2연) 성 밖을 바라보니, 아무 일 없는 양 세상은 평화로운데 (3연), 성 아래로 흐르는 라인강을 따라 그녀의 결혼의 행렬은 지나간다. 찬란한 햇살 아래 음악가들은 흥겹게 연주하지만, 아름다운 신부는 울고 있다.(4연)    

(2연에 붙여진 불협화 연속의 피아노 반주가 가사의 의미와 어우러지면서 가슴을 울린다.)


 

 
말러, <그녀의 결혼식>


슈만 가곡에 쓰인 시가 상징적인데 비해, 말러 가곡에 쓰인 시는 보다 직접적으로 상황을 묘사한다.

그녀의 결혼식날, 나에게는 눈물의 날이 될 것이다 (1연). (하지만 그의 슬픔과는 대조적으로) 세상은 아무일이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새들은 노래할 뿐 (2연). (자신의 슬픔으로 돌아와, 화자는 세상에 외친다.) 봄은 끝났다고. 노래는 이제 멈춰야 한다고 (3연). 

(암울한 '내 맘 속'과 아름다운 '바깥 세상'의 대조가 음악적으로도 명확하게 표현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 아마 이런 상황은 실연을 당하는 것 보다 더 가슴이 아픈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결혼식'은 이 생에서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거라는, 그녀와 함께 한 한 시대의 마침표 같은 의미일 게다. 그 슬픔, 우울함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참 절절하다. '그녀의 결혼식, 세상은 슬픈 나와 아무런 상관 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나는 어둠의 방에서 혼자만의 슬픔을 눈물로 삼킨다.' (19세기식의 내러티브지만, 우리 가요에서도 참 익숙한...)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나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이 떠오른다. 표현 방식이 다르기는 해도, 이 찌질한 상황(너의 결혼식에 나는 골방에서 슬픔을 삭이며 울고 있다)이 얼마나 범인류적 공감을 일으킬만한 소재인 것인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노래들은, 세상은 나의 슬픔과 아무런 상관없이 흘러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세상은 그 슬픔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로 차 있다는 걸 입증해주는 듯 하다. 슬픔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공개적으로 '이게 너만의 문제는 아니야'라고 속삭이며 공감을 극대화시키는 작사가-작곡가들의 감성과 감각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늦가을, 겨울의 문턱, 일부러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지만, 19세기 가곡들로 바쁜 생활에 무뎌지고 닫힌 감성의 채널을 열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너의 결혼식' 같은 사연이 없는 이에게도, 이 노래들은 화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깊은 슬픔에 묘한 감정이입을 이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