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Films on Musicians] 나치 시대 베를린 필의 모습 <Das Reichsorchester (제국 관현악단)>

혹자는 음악은 순수하고 영원한 것이어서 사회의 변화와 큰 상관없는 불가침의 예술 영역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악 안에는 음악만의 내부의 논리가 있어서 함부로 음악 외적인 요소들을 음악과 연관시키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다. 그럼 '음악가들의 삶' 또한 사회의 변화와 상관 없는, 사회의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고유한 예일 수 있을까이런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영화가 바로 나치 시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담은 <Das Reichorchester (제국 관현악단)>이다

스페인계 독일인 영화감독인 엔리케 산체스 란쉬
(Enrique Sánchez Lansch)는 나치 시대 베를린 필의 과거와, 생존 단원들의 인터뷰를 다큐멘터리로 엮어 한 사회의 소용돌이 속에 클래식 음악가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는지를 조명한다


영화 Das Reichsorchester 포스터.

 

영화는 우선 독일이 히틀러 치하의 괴벨 내각이 들어서게 되면서(1942), 베를린 필하모닉이 겪게되는 변화들을 생존 단원들의 인터뷰로 설명한다. 필하모닉 연주홀에는 걸려있던 멘델스존의 초상화가 사라지고, 유태인 단원들이 하나 둘씩 오케스트라를 떠나게 된다. 전체 오케스트라의 단원 수에 비해 유태인 단원들의 비율이 그리 크지는 않았고, 그들이 오케스트라를 그만둔 (혹은 타의에 의해 그만 두게 된) 이유가 다양했기에, 다른 단원들은 그 변화의 뒤에 놓인 정치적인 배경에 다소 둔감했던 것 같아 보인다.
감독은 오케스트라를 떠난 유태인 단원들의 향후 행적을 되짚어가는 한편, 생존하고 있는 단원의 경우는 직접적인 인터뷰로, 그리고 세상을 떠난 단원의 경우는 그들 가족의 인터뷰를 통해 이 시대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들의 삶을 추적해 간다
시대적인 순서에 따라 이들의 삶에 일어난 변화들을 인터뷰로 엮으면서, 사이 사이에, 푸르트 뱅글러가 지휘자였던 당시의 실제 연주장면을 삽입해서 이제는 역사로나 기억하는 사건들이 개개인 단원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제는 백발이 된 생존
 단원들의 인터뷰에 깔린 기조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베를린필을 "나치오케스트라"라고 부르지만 그렇게만 불리기에는 좀 억울하다는 반론이다. 괴벨 치하에, 연주회에는 계속해서 히틀러가 초대되었으나, 실제로 히틀러가가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에 참관하지도 않았었고, 그들은 과거 수백년 동안 이어져온 오케스트라 전통 속에서 살아간 음악가들이었을 뿐이라는.
이 분들은,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이 상황에 대해 크게 비판적이지 않았고 비판적일 수도 없었던 것 같다전통의 테두리 안에서 직업연주가로 살도록 길러진 이들에게 정치적 악행을 민감하게 받아들일 감각도 없었고, 그것을 알고 있었던 들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힘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의 인터뷰를 보면나름대로 세상의 흐름에 깨어있었고, 개인의 삶 속에서 허용된 만큼의 도덕과 양심에 따라 바르게(?) 살아오신 분들로 보이기는 하지만이런 인터뷰들이 결국,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라고만 주장하는 것 같아서 그리 보기 편하지만은 않았다.       

히틀러의 초상화를 배경에 두고 연주하는 베를린 필


영화를 지켜보던 중
, 이분들이 이렇게 정치적인 배경에 둔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를 알 것만 같았다. 독일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누렸던 지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들은 (최소한, 영화상에 비춰진 장면으로 미루어 보건데) '큰 조직의 일개 부속' 같은 지위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예술가'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이 시대의 특권층이었던 것이다.(음악 전통이 강한 독일이었기에 특히나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장기 해외 순회연주를 다니기도 했고, 그 가족들은 독일 내에서 귀한 물자들을 단원이었던 아버지가 해외에서 구해왔던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한다
월급을 받는 오케스트라의 단원이기도 했지만, 베를린필의 단원이라는 것은 대단한 영예이기에, 많은 학생들이 음악을 배우기 위해 개인적으로 이들을 찾았다. 단원들은 병역특혜를 받기도 했다. 예술가로서 개인의 삶을 꾸려가느라다른 이들의 고통에 귀기울일 여력은 없었던 것 같다.   

나치치하의 베를린 필 미국 방문에 반대하는 시위

 

감독은 한 쪽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고, 가능한 한 다양한 견해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를 '나치의 오케스트라'라고만 비난하기보다, 오케스트라 안에 유대인이나 친나치 성향의 단원들 이외에도 비정치적이고, 양심적으로 살고자 했던 많은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있었음을 조명해간다. 감독의 시각이 특별히 비판적이라거나, 특별히 옹호적이지 않으면서그 판단은 보는 이들에게 맡기는 듯중립적이었다. 알고 보니,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자료조사단계부터 음악학자가 함께 했기 때문에, 영화가 최대한 사실에 입각한 역사적 사료의 완결판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 같다.                   


<Das Reichsorchester (제국 관현악단)> 트레일러

이 영화를 뉴욕의 MoMA (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보게 되었었는데, 영화 뒤에 감독과, 함께 작업한 음악학자와 함께 하는 Q&A 세션이 있었다. 뉴욕에 유태인 인구가 많은 것은 알고 있었으나, Q&A 세션에 쏟아져 나오는 (유태인들로 보이는 분들의질문의 홍수에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질문들의 핵심은 '영화를 만든 이유가, 이 나쁜 베를린필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냐'는 질문을 가장한 비난
물론 결과론적으로는 베를린필에게 변명의 기회를 준 것으로 볼 수는 있지만, 감독과 음악학자의 설명대로, 생존단원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는 지금 시점에라도 빨리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고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증언을 듣고, 이 문제에 대해 되짚어보는 기회를 만든 것은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유태인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그들 조상들의 아픔을 떠올렸겠지만
, 나는 우리나라의 친일예술가 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이들에 대한 (뉴욕의 유태인 관객들이 나치 시대의 베를린 필의 행적에 보이는 것 같은, 혹은 끊임없이 나치 시대의 참상을 영화로 만들어서 그 시대를 고발하는 류의) 공분을 보지도 못한 것 같고, 이들의 행적에 대한 (이 영화가 보여준 것 같은) 사료의 축적도 이루어지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감독의 말대로, 그 시대를 증언해줄 분들이 살아계실 때에나 그나마도 가능한 일일텐데....아무튼, <Das Reichorchester> 한 특정 사회 속의 예술가들의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여러 가지의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