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and so on] 모차르트와 김건모

천당에서 교향곡 경연대회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출전자는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유명 작곡가들이었다. 슈베르트는 "미완성"을 썼기 때문에 참가할 자격도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들이 심사위원이었는데, 마침 심사위원장이 "운명"의 신이었기 때문에 베토벤이 우승했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우스개지만, <나는 가수다> 사태에 빗대어, 예술가들을 줄세워 경쟁하게 만드는 것
이 가당키나 했던 것인지 묻는 것 같기도 하고 , 결론적으로  “천당도 지옥으로 만드는” 경쟁이 과연 필요했던 것인지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3232052515&code=990201 
 

천당에서의 교향곡 경연대회 이야기를 들으니 떠오르는 생각이, '만약 심사위원이 “운명”의 신이 아닌 음악비평가나 음악학자였다면, 과연 누가 우승을 했을까' 였다. 물론 우승자를 골라내기가 쉬운 일은 아닐게다. 하지만, 내심 '운명의 신'이 심사를 보지 않더라도, 베토벤이 우승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베토벤 이전에도 교향곡은 존재해왔지만, 베토벤 이후 교향곡의 역사가 참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베토벤의 이름 앞에 붙는 ‘악성 (음악의 ‘성인’—신의 경지에 근접한 인간)’이라는 별칭은 모든 인간적인 역경과,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내며 쟁취해 낸 음악적 혁신에 대한 찬사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베토벤에게는 매일매일 극복하고 넘어서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사명감과
욕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스스로와의 힘든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음악에서도 이런 치열한 고민과 싸움의 흔적은 그대로 드러난다.   

 


베토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에서 '환희의 송가'가 연주되는 이 장면에는, 어린 시절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예술가로서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베토벤 이전에 모차르트가 있었다. 모차르트에게는 ‘천재’라는 별칭이 붙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사실 베토벤 음악에서 느껴지는 것 같은 치열한 고민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악보로 옮겨도 그런 자연스런 음악이 나왔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이미지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당구대에 공을 굴려가면서 악보를 술술 적어내려가는 (영화적으로 허구화된) 모차르트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베토벤 같이 스스로를 극복하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사명감이 있었을까? 글쎄… 그는 ‘천재’니까, 그냥 재능과 감에만 의존
해서 곡을 써도 그만큼 탁월한 음악을 썼을 것 같다. 하지만 <아웃라이어>의 저자는 모차르트에게도 ‘1만시간의 법칙’ (성공을 위해 필요한 훈련과 연습의 시간)이 적용되고 있고, 그가 음악가로서의 역작을 만들어내기까지 18년 동안의 숨은 노력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나는 가수다>를 지켜보면서, 베토벤 이후의 음악가들과 모차르트를 떠올렸다. 베토벤 이후의 음악가들이 가지고 있던 예술가로서의 역사
적 사명은 조금 더 나은 음악, 더 새로운 음악, 더 나아가서는 완벽함에 대한 추구였을 것이다. (역사적 사명이라고 거창하게 말은 하지만, 그냥 예술가들에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하던 것, 다른 이가 하던 것 보다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느껴진다.)

논란이 된 첫 미션 무대에서 다른 가수들에게서는 최선을 향해 노력하는 ‘인간적인 예술가’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반면 김건모에게서는? 김건모에게는 사실 그런 고민이 필요없는 '천재 모차르트'의 이미지가 있었다. (방송중 자문위원의 코멘터리로 언급되기도 했듯이, 김건모와 그의 음악은 여러 면에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보았던)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가 7등을 했던 그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은 우리가 기대했던 모차르트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이렇게까지 뜨거운 이슈가 된 건, 재도전 원칙에 대한 전복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에 대한 반감이 컸었고, 그를 ‘국민가수’로 칭송해왔던 청중들이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재도전 논란 이후의 그의 무대는, 이 청중들의 기대와 경고를 잘 알아들었다는 응답처럼 느껴졌다.
(이 응답을
꼭 ‘재도전’이라는 형식으로 했었어야 했는지—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재도전’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하루라도 빨리 응답하고 싶었던 가수의 심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술가가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정은, 스릴러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끔찍하고 잔인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예술가가 스스로를 극복하는 순간, 예술가 자신과 지켜보는 이가 맛보게 되는 감동은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다.
예능 서바이벌을
보면서, 이런 예술가의 모습을 마주하길 바라는 것이 무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논란 이후의 무대를 바라보며 이 모든 가수들에게서 '예술가'의 모습을 봤고, 거기서 감동을 느꼈다. 어떤 TV프로가 이렇게 생생하게 좀 더 나은 무대를 만들고자 하는 가수들의 노력을 담아냈었던가. 그 어떤 ‘교양 예술 프로그램’보다 예술적인 감동을 주었던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어떤 분께서 아래 글에 댓글을 붙여주셨듯이) 재도전 논란
이전의 무대가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 토끼가 낮잠을 자고 나서 꼴찌한 후에 다시 기회를 달라고 하는 걸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면, 논란 이후의 무대는 토끼가 낮잠자지 않고 거북이들을 격려하며 함께 걷는 길을 택한 모습이었다. 모차르트에게 베토벤의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베토벤의 고통을 모차르트가 조금은 함께 해줬으면 하는 평범한 인간적 기대가 먹히는 모습, 지나간 역사 속에서는 볼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가수다>에서는 맛볼 수 있었다.
앞으로는 어떤 예술가들의 모습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감동을 느
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

nnfm.tistory.com


p.s. 블로그 문닫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워낙 '나가수' 평론가는 아닌데, 주변에서 하나 더 써보라 하셔서 제 느낌을 적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