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and so on]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들: 위트레흐트의 SPEELKLOK 박물관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의 위트레히트란 도시에 다녀왔다. 네덜란드의 도시로는 암스테르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왠지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헨델의 곡 가운데 <위트레흐트 테 데움(Utrecht Te Deum)>이라는 곡이 있었다.
찾아보니, 18세기 초, 유럽지역의 영토 분쟁
을 마무리하는 평화협정이 1713년에 위트레흐트에서 맺어졌고, 이로 인해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이 종결되어 헨델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 <위트레흐트 테 데움>이라고 한다.


위트레흐트의 유서깊은 건물들: 대학 건물 가운데 하나 (상), 위트레히트 돔 (하)
(대학건물은 1600년대에 지은 건물이라고 하고, 돔의 역사는 중세시대로 거슬러가더군요.)



음악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도시일 것 같다는 짐작은 했지만, 아무래도 큰 도시가 아니고, 위트레히트 대학이 크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 동네 자체에 구경할만 한 것이 무엇이 있을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학회에 참석한 위트레히트 대학 교수님들께 물어보니 SPEELKLOK이라는 박물관을 볼만한 곳으로 추천해 주셨다. Mechanical musical instrument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의 박물관이라고 했다.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라... 처음에 소개를 들었을 땐, 전자음악이나 컴퓨터 음악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의 음악 도구들을 전시해 놓았다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연주자가 없이, 말하자면 '자동으로 연주되는' 악기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었다. 교회의 종, 시계의 자명종, 오르골 같이, 사람이 일부러 소리를 내기 위해 작동하지 않아도, 사전 조작에 의해 스스로 소리를 내는 도구들 말이다.

 

 MUSEUM SPEELKLOK의 입구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매시간 정시에 있는 가이드 투어를 기다리며, 일단 제일 꼭대기층인 3층부터 돌아보기로했다. 콜렉션을 보기도 전에 반한 장소는 바로 3층에 있는 휴식 공간.

 
 

 

사람이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조용하고 모든 것이 잘 정돈된 느낌이, 이 곳에 앉아 책 읽거나 공부하면 너무나 좋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장소가 이 박물관 건물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곳인데, 사진에 보이듯이 전면에는 오르간이 자리잡고 있고, 건물의 구조가 딱 유럽의 교회 모양새다. 아무래도 교회 건물을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만든 것 같다.


 건물의 2층, 3층의 양쪽 복도에 이렇게 컬렉션들을 전시해 놓았다. (사진은 오른 쪽 복도)


양쪽 복도를 따라 걸으며 전시된 것들을 하나하나 보다보면, 그냥 골동품 가구가 아닐까 싶은 물건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악기'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기엔 그냥 골동품 옷장이나 시계, 반짓고리 정도로 보이는데,
모두 소리를 내는 (혹은 음악을 들려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악기들'이다.

이런 도구들을 보면서, '기계로 소리나는 악기'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을 잡아가던 차, 박물관의 한쪽 편에서는 낯선 모습이 펼쳐졌다. 작은 상자들이 마치 서가에 책이 정리되어 있듯이 쭉 쌓여있었다. 저 상자들 안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을까? 악기 부품들이라도 들어있는 걸까 의아해하면서 다가가보니, 상자의 겉에는 음악가의 이름과 작품의 제목이 적혀져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없이 연주되는 악기의 악보인 셈.
 

 

앞에 전시된 악기들이 사람없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악기들이고, 뒤에 보이는 상자들이 이 악기들을 위한 악보를 담고 있다.
원시적인 CD Player와 CD의 관계랄까.

 
이 전시물들을 보다보면, 연주자가 없이도 음악을 듣고 싶어했던 인간의 욕망이 참으로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이 주로 교회나 왕실들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연주자들'에 의해 전파되고 향유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라디오나 음반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도, 연주자 없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꽤나 오랜 세월, 진지하게 고민이 되어왔던 것 같다.
많은 전시물들의 기원
이 1700년대로 거슬러간다. 물론 이런 도구들이 그냥 보기에도 꽤 고가의 품목으로 보이는 걸로 봐서, 이런 방식으로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의 귀족 계층이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악기들을 둘러보다가, 매 시간 정시에 있다는 가이드 투어를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1층 현관에서 관람객들을 모은 후에, 함께 1층에 마련된 한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이드는 이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악기들이 어떤 식으로 소리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소개를 해주고, 각각의 악기를 직접 시연해준다.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 연주자 없이 연주되는 악기가 이렇게나 다양하고, 이렇게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에 새삼 놀라게 된다. 전시된 악기들 저마다 소리내는 매체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고, 쓰임새도 다르다. '음반'같은 음악 매체의 혁신이 기술이 발달한 20세기 초에나 이루어졌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혁신을 가져온 그 이전의 (음악을 연주자 없이 들으려는) 인간의 필요와 기술의 발전사가 이곳에 펼쳐져 있었다.

 

 

유튜브에서 가져온 동영상. 다양한 시연 악기들이 보인다.
동영상에서 보이듯, 이 신기한 악기들 소리에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을 위한 관람 프로그램이 따로 마련되어 있음)

 

 

사람 없이 연주되는 피아노 (Pianola).
이 악기의 옆면에는 연주자 없이 피아노 홀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장면이 그림으로 남겨져 있다.

     

 사람 없이 연주되는 오르간
이런 오르간은 20세기 초반 카페나 댄스홀에 마련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댄스음악이었던 셈)

 

20세기 초반 네덜란드 거리에서 연주되었다는 오르간 (아래에 마차처럼 바퀴가 달려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거대한 휴대용(?) 오르간들을 접하고 나니, 이런 도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평생을 바쳤을 장인들이, 사람이 연주하는 음악을 담은 음반 혹은 음악 저장도구의 탄생으로 받았을 타격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고가의 도구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탄생하면서 급격하게 수요와 설 자리를 잃게 되었을 것 같다. 교회에서나 접했던 악기 오르간이 이렇게 세속적인 악기로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도 참 재미있는 변화다.

이 박물관은 과거의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생각들과, 테크놀로지와 음악의 관계, 연주자와 음악의 관계 등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어느 하나를 바라봐도 '어머나!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탄성을 지르게 하는 재미난 장소이다. 아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재미난 음악교육의 장소이기도 하다.

전시된 악기들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으시다면,    
http://www.museumspeelklok.nl/Collect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