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New York Music Guide] 카네기홀의 역사 만들기

무심코 응모했던 카네기홀 음악회 티켓 이벤트에서는 당첨이 되지 못한 대신, 카네기홀 투어 이벤트에 초대가 되었다. 보통, 카네기홀을 둘러보는 투어도 10불에 상당하는 티켓을 구매해야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공짜 투어를 할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나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했는데, 이건 그냥 투어가 아니라 VIP 투어란다. 이름하여 "카네기홀의 문서관리자(achivist) 지노 프란체스코니(Gino Francesconi)와 함께 하는 VIP 투어!"
 
음악회 시즌 중에는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카네기홀을 둘러보는 가이드 투어가 예정되어 있기는 한데, 내가 참석한 투어를 VIP 투어로 만들어준 건, 이 홀의 문서관리자인 프란체스코니가 가이드를 해준다는 점이었다. '문서관리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직업으로 들릴 것 같다. 우선은 문서들을 보관한 창고(archive)를 관리하는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겠으나, 더 자세히 말하자면 카네기홀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모으고, 보관하는 일을 맡은 분이다.

 

 

나같이 이벤트에 당첨된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약속된 시간에 카네기홀 로비에 모였다. 프란체스코니라는 분이 나와서 직접 자신의 소개를 하는데, 카네기홀에서 거의 40년 간 일을 했다고 했다. '외모를 봐선 40대 같은데, 40년을 일했다고?' 귀를 의심하면서 그 분의 설명을 듣다보니, 정말 줄리어드에서의 학창시절부터 카네기홀과 인연을 맺어 대략 40년 동안 이 곳에서 일한 것이 맞다. 나이를 가늠치 못하게 하는 동안(?)의 문서관리자였다.ㅋㅋ

이 분은 워낙 줄리어드에서 지휘를 공부했고, 학창시절에 카네기홀에서 보조 지휘자로 가끔씩 무대 뒤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줄리어드 졸업 후에, 지휘자로서의 꿈을 가지고 자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이태리로 유학을 떠났고, 매우 유명한 지휘자에게 제자로 받아들여져서 계속 지휘 공부를 했단다.
하지만, 레슨비가 떨어져 잠시 돈을 벌 생각으로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 때가 대략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자신이 무대 뒤의 지휘자로 일했던 카네기홀로 돌아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를 찾던 중, 당시의 디렉터는 그에게 카네기 홀의 역사를 만드는 일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수 년 후면 카네기홀의 역사가 거의 100년에 가까워질터인데, 카네기홀에 관련된 기록들이 너무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인식한 디렉터의 아이디어였다. 이 일이 흥미롭게 느껴졌던 프란체스코니는 일단 뉴욕에 머물며 카네기홀에 관련된 가능한 한 많은 기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단 시작한 일이 멈출 수 없는 일이 되어 30년간 일하게 된 셈...)

 

카네기 홀의 제일 큰 Stern Hall 무대. 리허설 준비가 한창이었다.

 

언뜻 생각하기에 카네기홀이야 워낙 세계적인 홀이고, 역사적인 공연이 많이 열린 곳이라, 공연의 티켓이나 프로그램, 포스터 같은 것들이 당연히 잘 보존되어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몇 년도 몇 월 몇 일에 어떤 공연이 있었는지를 설명해 줄 '문서'라는 것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었다는 것. 사실, 차이코프스키가 지휘를 했던 1891년의 개관기념 공연도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날 공연의 프로그램이나 티켓은 카네기홀 내부에는 보관되어 있지 않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록물들을 찾아내어 오늘날의 역사적인 컬렉션으로 복원한 이야기는 무용담에 가깝다. 그는 우선, 카네기홀의 개관당시(1891년) 부터 초반기의 역사를 설명해줄 기록들을 찾아내야 했으나 이 일을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때마침,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온 "미국 은퇴인 연합"의 잡지를 접하게 되었다. (이 잡지를 알게 된 것은 완전한 우연이었다. 당시의 여자친구는 은퇴할 나이도 아니었는데 (홍보용으로) 집으로 배달된 이 잡지를 받고는 매우 기분 나빠했다고.ㅋㅋ 하지만 프란체스코니에게는 그야말로 일생 일대의 행운이었다.)
이 잡지가 그야말로 '은퇴인들' 그러니까 카네기홀의 초반기를 알만한 나이든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는 바로 이 연합에 회비를 내고 가입한 후, 잡지에 기고문을 실었다. "카네기홀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모읍니다." 하고 말이다. 도움을 구해야할 대상을 정확하게 찾은 셈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던 음악회 티켓과 프로그램들이 "혹시 이게 도움이 될까?"하는 메시지와 함께 엄청나게 배달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프로그램 노트 모으는 게 취미인데, 나중에 이것들이 빛을 볼 날이 있으려나.^^

 

이렇게 해서 자료들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그는 이베이(ebay)나 플리마켓(벼룩시장)을 누비며 카네기홀에 관련된 모든 자료들을 수집했다. 예상치 못한 타주의 작은 마을 플리마켓에서 발견한 카네기홀 공연실황 음반이며, 공연 사진들은 그에게 희열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해서 어딘가에 흩어져있던 사진, 그림, 포스터, 프로그램, 레코딩, 그리고 ephemera 라는 단어로 분류되는 잡다한 물건들이 그에게 속속 입수되었고 그것들로 역사적인 컬렉션을 만들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이런 카네기홀에 관련된 희귀 물품들을 찾아내느라 늘 인터넷이나 실제 옥션을 분주히 찾는다는 그는, 홀의 투어를 안내하는 동안에도 경매인으로부터 낙찰여부를 알려주는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로즈 박물관의 한쪽 벽. 카네기홀 공연 실황 음반 자켓들로 꾸며져 있다.


그가 모아놓은 카네기홀 관련 기록물과 사물들의 범위와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번스타인을 뉴욕시립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임명하는 서한이며 리스트, 스토코프스키 같은 유명 음악가들의 자필 편지들, 개관기념 공연의 티켓, 비틀즈 공연 당시의 사진과 친필 사인들 등, 카네기홀의 역사가 이렇게 해서 쌓이게 되었다.
개관 100주년(1991년)에는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가지고 카네기홀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 Rose Museum을 열었다. 이제는 역사 속에 남은 거장 뮤지션들의 친필 사인은 너무나 대단한 기록물이지만 다른 소장품들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하게 느껴진다. 20세기 초반 스턴 홀 무대 위를 비추었다는 전구부터, 엘라 피츠 제럴드가 공연에서 썼던 안경, 카라얀이 카네기홀 무대에 섰을 때 사용한 지휘봉, 베니 굿맨이 연주했던 클라리넷 등의 진귀한 물건들은 사실 구입하는 데에 (혹은 기증받는 데에) 든 돈 보다 보험료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는 희귀품들이 되었다.

 



 

  (사진 위) 비틀즈 공연 포스터와 프로그램노트 위에 남긴 멤버들의 친필 사인
(사진 아래) 엘라 피츠제럴드의 카네기홀 공연 실황 음반과, 공연 당시 착용했던 안경

 

가장 인상적이었던 전시물은 베니 굿맨의 클라리넷이었다. 배니 굿맨의 카네기홀 공연 자료를 수집하던 차, 프란체스코니는 그의 딸과 연락이 닿게 되었다고 한다. 배니 굿맨의 역사적인 카네기홀 공연 (1938년)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안타깝게도 남아있는 자료는 없다고 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공연에 자기가 객석에 있었고, 그 공연의 분위기와 아빠가 연주한 곡들, 그리고 아빠가 남긴 공연에 대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남아있는 공연관련 '자료'는 없었지만, 이로써 베니 굿맨의 카네기홀 무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기록할 수 있었다.

 



베니 굿맨 밴드의 1938년 카네기홀 공연 실황 "Sing, Sing, Sing"

 

이렇게 연락을 하며 가까워진 베니 굿맨의 딸은, 로즈 뮤지엄의 개관을 기념하여 아버지가 사용하던 클라리넷을 카네기홀에 기증했다고. 카네기홀 공연때 사용한 클라리넷은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워 하며 기증했다는데, 후에 소수의 클라리넷 연주자들에게 비밀리에 악기를 불어보게 했더니, 이 악기가 코플랜드가 베니 굿맨을 위해 작곡했던 클라리넷 협주곡 음반 녹음에 사용되었던 바로 그 소리를 내는 악기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악기가 가입된 보험회사가, 악기가 안전하게 박물관 윈도우 안에서만 전시되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실제 연주에 사용하고 있지는 못한다지만, 어쨌건 대단한 가치의 유물을 기증받은 것은 분명하다.       

 

 

베니 굿맨의 클라리넷과 밴드의 타악기주자가 사용한 스틱들 (그리고 오른쪽 옆엔 번스타인의 지휘봉)

 

 

위의 악기로 연주된 것으로 추정되는, 베니 굿맨이 연주하는 코플란드의 클라리넷 협주곡


지휘자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프란체스코니 아저씨는 30년 간의 작업을 통해 카네기홀의 오랜 역사를 훌륭하게 복원해 놓았다. 이 분의 인생 자체가 마치 카네기홀의 역사를 보는 듯, 입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너무나 생생한 역사의 증언이었다. 이렇게 모든 사료들을 책임지고 모으고 관장하는 분이 계시니, 어딘가에 버려졌을 기록들이 역사적인 자료로 남게되고, 역사를 서술하는 학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날 카네기홀도 속속들이 구경 많이 했지만, 기록, 문서, 물증, 그리고 역사의 관계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카네기홀도 역사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이 개관 이후 90년 가량이 흐른 무렵이다. 올해가 카네기홀 개관 120주년이라고 한다. 30년의 세월 동안 archivist 한 분이 창출해 낸 이 컬렉션을 보니 참 대단하다 싶다. 우리나라 공연장들의 기록문서들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고, 그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고 있을까? 88년 올림픽 기념으로 정부에 의해 발주된 메노티의 오페라 악보도 행방불명 되었다고 하니 (이웃 블로그의 '나사못회전님'께서 알려주심) 한국에서의 음악 관련 사료들의 보관 상태가 심히 궁금해진다.   

(카네기홀 관람기는 다음 편에 계속)


<뉴욕 음악 가이드>의 일부가 마로니에 북스 블로그에도 연재됩니다.  
 http://maroniebooks.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