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Films on Musicians] 반 고흐는 안 나오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포스터가 눈길을 확 사로잡는 영화가 있었다. 반 고흐의 명화 <별이 빛나는 밤>이 파리 세느강의 정경과 그 강가를 걷는 남자의 모습과 절묘하게 합성이 되어있는 포스터. 바로 <Midnight in Paris>라는 영화의 포스터였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함께 보러 간 이 영화

. 여름방학용 블록버스터들이 판치는 가운데,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조용히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우디 알렌 감독의 최신작이었다.

(
마지막으로 본 우디 알렌 감독의 영화가 97년작 <Everyone Says I Love You>였는데줄거리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뉴욕이란 곳을 정말 가보고 싶었단 것, 그리고 강가에서 골디혼과 우디 알렌 감독이 춤을 추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이 영화도 아마도 '파리'라는 도시에 엄청 가보고 싶게 만들어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역시나 영화의 시작은 파리의 아름다운 정경들로 채워진다
. 샹젤리제 거리, 에펠탑, 노트르담 성당, 사크르 쾨르, 몽마르트, 오페라하우스, 그리고 여러 뒷골목의 정경등등, 마치 엽서 속에나 등장할 법 한 아름다운 경치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비가 내리는 파리의 모습이 다시금 새롭게 비춰진다. 파리는 비가 내릴 때 더 아름다워보이지 않느냐는 감독의 시선이 영화 처음의 몇 컷에서부터 벌써 느껴진다.


베르사이유 궁전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 커플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하는 (그리고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는)  헐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길(Gil)은 약혼녀 가족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왔다우연치 않게 만나게 된 약혼녀 친구 커플의 잘난척에 심기가 불편한 길은 혼자 호텔로 돌아가겠다며 자리를 뜬다. 술에 약간 취해 길을 잃고 어떤 계단 앞에 앉아있던 중, 12시가 되는 종이 울리자 아주 오래 된 자동차 한 대가 그의 앞에 선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인물들은 그야말로 야타족을 연상시키듯 주인공을 차로 끌어들이고, 그를 데리고 어떤 장소로 향한다.
그가 따라간 곳은 바로 1920년대의 파리 살롱. 스코트 피츠제럴드콜 포터, 헤밍웨이 (이 중에서 아마 우리에겐 '헤밍웨이' 정도만 익숙한 이름이지만, 미국의 문학, 음악계에서는 매우 저명한 분들이시다.) 길은 자신이 그토록 존경, 동경해온 인물들이 자신의 눈 앞에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날로 부터 시작된, 일종의 타임머신을 타고 1920년대의 파리로 가는 '시간여행'은 매일 밤 12시에 다시 시작된다. 이 여행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인물들이 참으로 재미있다. 미국의 여류 시인 겸 소설가로서 당시 파리 예술가들 사이의 핵심인물 격이었던 거트루드 스타인,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와 피카소의 애인이었던 패션전공의 아드리아나), 살바토르 달리, T.S. 엘리엇  국어, 영어, 미술시간에나 들어봤음직 한 작가, 예술가들이 현실 속의 인물들처럼 등장을 한다.


피카소가 그린 거트루드 스타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밤마다 이어지는 시간여행을 통해, 주인공 길은 자신의 소설 초고를 거트루드 스타인과 헤밍웨이가 읽어봐주는 행운을 얻게되고, 또 거트루드 스타인의 집에서 알게 된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낮시간에 (현재로 돌아와) 파리의 길거리를 거닐다, 길거리에서 파는 중고 책들 가운데에서 아드리아나의 비망록을 발견한 길은, 아드리아나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날 밤(1920년대로 돌아가)에 아드리아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 순간 이들은 또 다른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고, 이 곳에서는 고갱, 드가 등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시대는, 바로 19세기 말부터 세계 1차 대전 (1914-1918)이 있기 이전의 시기인 "아름다운 시대(Belle Époque)"였고, 이 곳에서 그녀가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자, 그녀는 이 시대에 머물겠다고 한다

사실
20세기 초반의 문학과 예술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보면, 끊임없이 카메오처럼 짧게 등장하는 (유명 배우들의) 유명 예술가들 연기를 보는 묘미를 놓치기 쉬울 것 같다. 그리고시간여행에서, 길은 왜 1920년대를 동경하는지, 아드리아나는 왜 그 보다 이전시기인 "아름다운 시대"를 동경하는지, 시대적인 차이를 구분 못하고 넘어가기 쉽다.  

길이 동경하는
1920년대의 파리는,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불리는 1차 세계대전 후에 환멸을 느낀 미국의 지식계급 및 예술파 청년들이 예술적인 망명지로 삼았던 곳이다. 반면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의 파리는 '황금시대'라고 할 만큼 훌륭한 예술가들이 한 데 모여있던 곳이다음악사를 들춰볼 때도, 한 시대(1900년대 전반), 한 도시(파리)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서 이렇게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꿈꾸었던 것인지가 신기하게까지 느껴졌었는데, 1900년대의 전반부도, 전쟁 이전과 전쟁 이후의 시대로 구별이 되고, 각각의 예술가-미국 작가인 길과 패션 전공의 아드리아나-에게는 그 각각의 시대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끔씩 음악을 들을 때
, '이 음악이 만들어진 시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길은 자신이 동경하는 ()문학작품이 만들어진 그 시대로 가고 싶었을 테고,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 생각하는 의상을 만들 수 있는 그 시대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 과거에 머물 수 없는 길은 날이 밝으면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자신이 매일 밤 과거로의 여행을 다니던 사이, 약혼녀는 친구의 약혼남과 바람이 나 있었음을 알게 되고... (연인관계가 깨지는 과정이 우디 알렌 스럽게도 유쾌하게 그려진다.) 약혼녀와 헤어진 후 정처없이 세느강 다리 위에 서있던 길은,  포터의 유성기 음반을 팔던 고음반 가계의 아가씨를 우연히 세느강 위의 다리에서 만나고, 파리엔 갑자기 비가 내린다비가 오면 부리나케 우산을 쓰던 헤어진 약혼녀와 달리, 이 아가씨는, '파리는 비가 올 때 아름답다'면서 비를 맞으며 함께 걷자 한다. (뭔가 좋은 관계가 될 것을 암시)





약혼녀와 깨진 그날 저녁에,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거냐며, 저 주인공 남자가 이해가 안된다면서 영화의 스토리와 결말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열을 내는 (영화를 함께 본) 친구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영화 속 대사로도 등장하지만, "예술가들은 다들 어린내 스러운 면이 있다"고 하면 좀 변명이 되려나. 주인공 길의 모습에서, 현실적으로, 논리적으로 맞는 선택 보다는, 순간적인 감정과 감성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예술가의 모습이 느껴져서 난 더 재미있다 생각했는데... 

아무튼
, 영화는 예술가, 예술애호가들이 과거, 특정 시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향수 같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때가 좋았지' 혹은 '내가 그 때 태어났더라면....(지금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을까?)' 이런 상상을 영화적인 판타지로 풀어놓는다역사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재미난 시간 여행을 만들고, 거기에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를 더한 우디 알렌 감독의 '위트' 내공에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가 한국에서
 아직 개봉되지는 않은 듯 하다. 낯선 이름의 예술가들의 줄줄이 등장해서 그 묘미를 놓치고 넘어가기 쉽지만, 이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약간의 정보를 가지고 본다면 더욱 흥미롭게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설명해주는 관광안내원으로는 현재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인 칼라 브루니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시대의 음악가들만을 엮어서 영화를 만들어도 재미있을텐데
....1920년대에 파리에서 활동한 유명 음악가들도 수없이 많지만,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음악가는 오직 한 명-콜 포터 (Cole Porter)이다. 미국의 뮤지컬 작곡가로 유명한 분으로 대표작이 <Kiss Me, Kate>라고 함. 영화 속에서도 미국 재즈 풍의 노래를 피아노를 치면서 연주한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잠시 망명했던 미국의 전후세대 위주로 영화를 만들다보니, 다른 음악가들의 등장은 불가능했던 것 같다. 콜 포터의 음악을 덧붙이면서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마친다. 





p.s. 포스터에서는 고흐의 그림을 차용해서 파리에 대한 판타지를 불러일으켰으나, 막상 영화를 보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미술가들 가운데 고흐는 없다. 당연한 것이, 빈센트 반 고흐는 1890년에 사망. 포스터만 보고 좋아서 영화를 고르신다면, 요즘 말로 '낚이게' 되시는 것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