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미배의 Music Story

[and so on] 과연 립스틱만 잘못 발랐을까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같은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과 <남자의 자격-하모니 편> 같이 음악을 배우는 것을 소재로 했던 음악 예능 프로그램 붐이 일면서,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이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도 궁시렁댈 수 있는 수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oo 프로 봤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 출연자의 노래는 왜 좋았고, 누구는 뭐가 문제였고…’ 하는 이야기로 자연스레 연결이 되는 걸 보면, 이제는 음악을 듣는 사람들 모두가 심사위원이자 평가단이고, 음악을 듣는 귀가 참 날카로와 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미 누누히 방송에서도 언급되고 있고, 시청자들도 모두 공감하듯,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얼마나 훌륭한 가수들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개인적 취향의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이들의 능력을 순위로 매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고, 서로 다른 색깔의 가수들이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억지스런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냥 대형 가수들이 한 무대에 오르는 '수퍼 메가 콘서트'나 '빅 쇼'가 아닌, '서바이벌' 예능의 모습으로 나타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게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하는 가수가 노래를 잘 하는지 아닌지, 인기가 있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순위프로가 아니라, 주어진 미션에 대한 해결능력을 보여주면서 그 과정 속에 나타나는 경쟁, 긴장감들을 보여주는 '리얼 버라이어티'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의 평가를 이미 뛰어넘어선 출연진들이므로, 꼴찌를 해서 탈락을 한 다 해도 가수로서의 능력이 꼴찌가 아닌, 특정 미션에 대한 해결 능력에 대한 순간의 평가가 최저점으로 나왔을 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꼴지를 하게 된 가수가, ‘나는 노래도 열심히 했고, 피아노도 잘 쳤는데’ 떨어졌다며, 탈락하게 된 것에 아쉬워하고, 결국은 재도전의 기회를 만들어 냈다. 우선은 ‘꼴찌 탈락’의 룰을 첫판에 뒤짚어버린 방송 제작진들과 가수의 선택이 실망스럽지만, 사실 ‘음악청중’의 입장에서 불쾌한 것은 그의 재도전을 정당화시키는 과정이다. 그가 떨어진 이유가 립스틱을 바른 퍼포먼스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노래가 아닌 다른 요인 때문에 탈락된 것이라면 재도전의 기회를 줘야한다고 하고, 가수 스스로도 립스틱을 괜히 발랐다고 한다.

정말? 난 이 논리가 평가단의 귀를, 더 나아가 시청자들의 귀를 참으로 무시하는 말들로 들렸다. 요즘 청중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국민가수가 립스틱을 얼굴에 문대는 자기희생적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 이유만으로 꼴찌를 만들었을까.


기존의 곡들 가운데에서 미션곡을 선정하게 된다면, 미션의 평가 기준은 그 곡을 얼마나 새롭게 들리도록 만들어졌는가에 있는 것 같다.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뻔한 노래를, '얼마나 뻔하지 않게 새롭게 재창조 하는가', '진부함과 익숙함을 어떻게 그 가수만의 색깔과 독창성으로 살려내는가'가 관건이었다.
여기서 가수는, 과거에 히트했던 미션곡들의 가치(사랑받았던 이유)를 간직하면서도, 그들이 새로운 옷을 입혔을 때 얼마나 더욱 빛을 발하게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음악적 역량을 펼쳐놓아야 했다. 스스로 편곡을 했건, 전문 편곡자의 도움을 받았건, 미션 수행의 포인트는 옛 히트곡의 진부함을 무대 위의 참신함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수의 음악적인 역량이었을 것이다.
가수만의 곡을 꿰뚫는 안목, ‘재해석’ 능력이 중요하고, 그것을 살려낼 구체적 방법을 알고 있는 연주자, 편곡자를 선택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것이 이들이 평가받아야 할 미션이었다.


첫 공연을 했던 윤도현이 1위의 평가를 받은 것은 음악적으로도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윤도현은 <나 항상 그대를> 원곡 피아노 반주에 뭔가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음을 잘 잡아낸 듯 하다. 준비과정에서 피아니스트를 등장시킬 계획을 이야기할 때에는, 눈에 띄는 퍼포먼스를 위한 의도라고 짐작했었는데, 막상 실제 공연을 보니 이 원곡이 워낙 피아노 반주가 좋은 곡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 장점을 1절에서는 전문 피아니스트를 등장시켜 극대화시켰고, 2절에서는 락 스타일로 발전시켜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게 했다. 피아노와 락밴드의 어우러짐은 마치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것 같은 화려한 소리 효과를 만들어냈고, 윤도현은 이러한 음악적 비전을 무대 위에 이끌어낸 지휘자와도 같았다. (무대 위의 단 위에 올라가서 음악에 몸을 맡긴 윤도현의 퍼포먼스는 실제로 지휘자를 연상케 했다.)

백지영, 이소라 두 여자 가수의 노래는 편곡 자체가 음악을 새롭게 들리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가수들의 뛰어난 감정표현력 때문에 이 노래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나치게 슬프게 불렀다는 비판들도 있지만, 노래가 담고 있는 감정을 극대화시켰고, ‘이 노래가 연주자(가수)에 따라서 이렇게 다른 노래가 될 수 있구나’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편곡의 힘을 제대로 이용한 경우가 김범수와 정엽의 노래였다.  김범수의 곡은 1절과 2절의 대조가 귀를 사로잡을 만 했고, 어떤 분위기의 노래도 잘 소화해 낼 수 있는 이 가수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편곡이었다. 
댄서의 등장 역시도 무대 위의 음악적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장치였기에 평가에 플러스 요인이되었으리라 본다. 정엽의 곡은 트로트가 편곡을 거쳐 거듭나면 이렇게 새로운 맛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을 일깨우면서, 정엽이란 가수가 어떤 음악을 가져와도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재창조할 능력이 있는 가수라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사실 제일 좀 판단하기 어려웠던 경우가 박정현의 공연이었는데, 특별히 편곡이  곡 자체를 새롭게 들리게 만든 것도 아니고, 특별히 감정 표현이 대단해서 감동을 끌어낸 것도 아니었다. 곡 자체가 특별히 ‘새롭다’는 느낌을 만들어내기에 그리 좋은 재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심하게 템포변화를 줄 수도 없는 곡이었고, 트로트처럼 다른 스타일로 편곡해놓으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장르의 곡도 아니었다.)
하지만 기존의 곡에서 새 느낌, 새로운 소리를 찾아내려는 과정에서 마치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것과 같은 진지함과 열정이 분명 느껴졌다.


이에 비해, 김건모의 공연은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의 화려한 피아노 전주는 흠잡을 데 없이 연주되었지만, 그 진행이 옛 발라드 노래에서 들었던 전주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았고, 반주의 화성 또한 그리 새롭게 들리지가 않았다(그의 노래 어디선가 들어봤던 소리).
편곡이 특별히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고, 노래에서 다른 가수들처럼 연주에서처럼 극대화된 감정이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냥 잘 부른 노래였지, 크게 남다르다거나, 새롭다는 느낌이 없었다. ‘진지한 걸 싫어하는' 가수에게 너무 진지한 원곡이 아니었나 싶다. (원곡보다 감정을 극대화 했다면 신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편곡을 좀 더 달리할 수는 없었을까. 다른 이들은 생명이 다한 노래를 살려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우리의 국민가수는 자신의 해오던 음악의 틀 안에서, ‘경험상 이 정도 하면 먹히던데…’하고 자만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았다. 문제는 립스틱을 바른 퍼포먼스가 아니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라는 노래에서 진짜로 ‘립스틱 짙게 바르는’ 퍼포먼스를 떠올리는 생각의 진부함이 음악으로 드러났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의 청중들이 얼마나 예리한데…

 

립스틱 바른 게 잘못은 잘못이었다. 보는 순간 노래의 맥락은 사라지고, 영화 배트맨 속의 조커만이 떠올랐다.


그 무대에 ‘노래를 잘 못하셔서’ 혹은 ‘음악이 별로여서’ 탈락하셨다고 이야기를 들을 만 한 가수는 아무도 없다. (그저 어떤 미션에 역량이 좀 덜 발휘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저 자의식 강한 최고의 가수들을 모아놓고 누구도 감히 ‘음악적 이유’로 떨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서, 가장 완곡하게 말할 수 있는 탈락의 이유가 가장 눈에 띄는 음악 외적인 이유—립스틱 바른 퍼포먼스—였을 것이라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 빈약한 이유를 근거삼아 결과적으로 게임의 룰까지 뒤집히게 되니, 시청자들은 더욱 우롱당한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닐까. 이번 논란 때문에 시청률이 더욱 올라가게 될지, 아니면 시청자들이 영영 등을 돌리게 될지 앞으로가 사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