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허지웅의 영화로 세상읽기

실패담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단 두 세 마디로 규정하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삶은 크고 작은 모순들로 가득차 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사람부터, 끝내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 찍힌 사람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타인의 모순을 잘 참아내지 못한다. 왜 일관되지 않으냐고 타박한다. 상대의 굴곡으로부터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삶은 자연스레 단 두 세 마디 인상비평의 소재가 되기를 거듭한다. 나쁜 놈이거나, 착한 놈이거나. 누군가의 삶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그래서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담보하기 어렵다. 필요 이상의 주관이 개입되어 실제 역사의 사실관계와는 별 관련이 없는 픽션이 되기 쉽다. 사실 어려운 일이.. 더보기
대학살이 가까이 왔다 ㆍ‘노인을 위한…’처럼 무력감을 이야기하는 ‘카운슬러’ “당신이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헤매고 있는 그 세상은, 애초 그 실수가 행해진 세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는 냉엄한 영화다. 리들리 스콧은 코맥 매카시의 각본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국내에 이미 출간되어 있는 코맥 매카시의 카운슬러 시나리오와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의 잔재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될 본인의 영화를 이토록 완전한 ‘타자’처럼 다룰 수 있는 감독도 드물 것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 페이지에 가까워질수록 씨줄과 날줄이 드러나듯 사연과 정체가 선명해지는 종류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이 영화는 언뜻 서로 별다른 관련이 없는 길고 지루한 대화 시퀀스들이 성기게 모여 있는 결과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말에 이르는 정확한 사연.. 더보기
평범한 어른이 되는 법 인간은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조금씩 죽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로잡힐 과거는 늘어간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죽음 따위는 근사한 문장 안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지막 순간,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멀찌감치 초과해버린 과거의 무게에 눌려 버둥거리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우스꽝스럽지도 비장하지도 않은 그냥 인류, 라고 부를 만한 광경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주변을 책임질 일이 늘어간다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책임을 진다는 건 말처럼 그리 고상한 일이 아니다. 더럽고 치사한 일이다. 내 소신이 아니라 남의 소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일이다. 나이 오십에 누군가는 백가지를 책임져야 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열가지를 책임지고 있을 테다. 그러나.. 더보기
잡스와 게이츠, 모방과 혁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일까. 아니 요즘 유행하는 혁신이라는 단어를 가져와보자. 모방은 혁신의 어쩔 수 없는 그림자일까. 최근 삼성은 다시 한번 특허 침해 소송에 휘말렸다. 이번에는 애플이 아니었다. 다이슨이었다. 다이슨은 삼성의 신제품 ‘모션싱크’가 자사의 기술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청소기가 방향을 전환할 때 재빨리 회전할 수 있게 해주는 다이슨의 기술을 삼성이 가져다 썼다는 것이다. 이에 삼성은 적극 대응할 것이라 밝혔다. 사실 후발 주자가 이미 그 영역에 있어서 일종의 생태계를 창조해낸 선두 주자를 모방하는 건 거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경쟁은 고사하고 시장에 진입조차 할 수 없다. 물론 스스로 이미 글로벌 일류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또 그에 어울리는 지위를 누리면서 정작 실무에.. 더보기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그 옹색한 이유 지난 6월 이 지면에 에 대한 국방부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언급한 일이 있다.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번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할 때 그것은 ‘표현’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닌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두번째, 표현의 자유 문제에 있어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가처분 신청은 그것이 한국의 정치사회환경 안에서 각 진영의 편의에 따라 매번 검열수단으로 악용되어왔기 때문에 위험하다. 세번째,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할 수는 없다. 다행히 법원은 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정식 개봉일 하루 전이었다. 재판부는 “영화의 제작과 상영은 원칙적으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면서 “영화는 천안함 사고 원인을 놓고 국민이 제기하는 의혹에 .. 더보기
‘설국열차’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여기 세 가지 장면이 있다. 가 우리 세계에 관한 어떤 가능성, 나아가 명백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비전은 이 세 가지 장면 없이 성립되지 않는다. 가 단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의 혁명 서사를 지루하고 게으르게 답습한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해석은 언제나 개별의 몫이다. 그러나 적어도 라는 본연의 이야기가 닿고자 하는 종착역은 그보다 훨씬 멀리 서 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장면을 짚어보는 작업을 통해 우리는 라는 모험이 과연 제시될 만한 비전인지 혹은 그저 서투른 선문답에 불과한지 다시 한 번 가늠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첫 번째 장면은 예카테리나 다리 시퀀스다. 정확히는 해피 뉴 이어 대목이다. 커티스의 꼬리칸 무리와 윌포드의 복면 부대가 혈.. 더보기
‘호스텔’이 과연 범인일까 사람들은 낯설고 알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메리 셀리의 을 들춰보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천진한 영혼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타도의 대상으로 일찌감치 낙인찍혔던 건, 사람들이 보기에 그가 ‘나와 다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것을 향한 공포와 혐오는 곧잘 너무나 쉬운 이유나 해법을 만들어내는 태도로 연결된다.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를 두고 서둘러 자극적인 동기와 인과관계를 ‘창조해내는’ 태도 말이다.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에서 이와 같은 양상은 매우 흔하게 노출된다. 특히 속칭 ‘10대 오원춘 살인사건’ 혹은 ‘용인 엽기 살인사건’으로 불리고 있는 최근의 사건과 같이, 동기 자체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 별안간 수 년 전의 영.. 더보기
표현의 자유 억압하는 ‘가처분 신청’ 다음의 세 가지 사례를 보자. 지난 200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씨가 영화 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사건을 다룬 영화다. 법원은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가운데 일부만을 받아들여 영화 속에 삽입된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고 상영하라 판결했다. 영화는 3분30초가량이 암전된 상태로 관객에게 공개됐다. 당시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영화가 작품의 소재가 된 개인이나 집단의 반발에 부딪힐 때마다 소송에 부쳐지고, 법률적 판단을 따라야 한다면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달 8일 국방부는 다큐멘터리 에 대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로 결정했다. 는 북한 어뢰에 의해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합동조사단의.. 더보기
분노를 도매가로 팝니다 항상 가장 잘 팔리는 건 공포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MSG를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 마릴린 맨슨을 들으면 총기난사범이 된다. 게임을 하면 폭력적이 된다. 학교폭력의 원인은 웹툰이다” 등. 공포 마케터들은 특정 결론에 이르기까지 작용하는 수많은 원인과 맥락을 배제한 채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너의 불행이 초래되었거나, 혹은 곧 초래될 것이라고 겁 주는 방식으로 공포를 판매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분노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 이렇게 큰 부조리가 있는데 지금 잠이 옵니까. 당신이 부끄럽지 않은 부모이자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당장 분노하고 주머니를 여세요.” 이와 같은 딜러들의 마케팅 포인트는 실제 사회의 부조리를 규명하기 위해 골몰하고 행동하는 이들과는 달리, 그 .. 더보기
서로에게 상처주는 ‘정의로운 폭력’ 한국 사회에는 나와 생각이 다른 타자가 정의롭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습속이 있다. 그래서 종종 법상식을 상회하는 언어 폭력이나 명예 훼손, 신상 공개와 같은 일들이 정의롭지 않은 자들에 대한 단죄의 방식으로 집행된다. 정의롭지 않은 자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이러한 폭력은 늘 떳떳하다. 가해자들은 되레 무협지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근대의 지사, 혹은 저널리즘의 보루로 스스로를 과장되게 치장한다. 이는 분단국가라는 사실관계로부터 87년 체제의 한계에 이르는 한국 사회의 특수성 안에서 만들어진 태도다. 이러한 경향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이 상반된 정의로움에 대해 이쪽에선 적반하장이라 생각한다. 저쪽에선 이중잣대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상대가 악마임을 주장해야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