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허지웅의 영화로 세상읽기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그 옹색한 이유

지난 6월 이 지면에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국방부의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언급한 일이 있다.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번째,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할 때 그것은 ‘표현’을 인정한다는 것이 아닌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두번째, 표현의 자유 문제에 있어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가처분 신청은 그것이 한국의 정치사회환경 안에서 각 진영의 편의에 따라 매번 검열수단으로 악용되어왔기 때문에 위험하다. 세번째,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할 수는 없다.


 

다행히 법원은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정식 개봉일 하루 전이었다. 재판부는 “영화의 제작과 상영은 원칙적으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면서 “영화는 천안함 사고 원인을 놓고 국민이 제기하는 의혹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점에 비춰 볼 때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법체계라는 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흐릿한 인상과는 달리 공백과 부조리 위에 세워진 누각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결정이다. 사법당국을 향한 시민들의 막연한 불신과 혐오는 이런 식의 판결들이 누적되고 알려짐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사달은 법정이 아닌 시장에서 벌어졌다.


메가박스가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을 돌연 중단시켰다. 관객이 극장을 가장 많이 찾는 주말을 앞두고 개봉 이틀 만에 상영 중단이 통보된 것이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같은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 가운데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 중인 곳은 메가박스뿐이었다. 메가박스는 공지를 통해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로 인해 관람객 간 현장 충돌이 예상돼 일반관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배급사와의 협의하에 상영을 취소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인들은 아무래도 윗선이 개입된 결정이 아닌가, 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개봉 이틀 동안 다양성 부문 박스오피스 1위를 할 만큼 반응이 좋은 영화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상영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 이해되지 않으며, 일부 단체의 항의 및 시위를 운운한 것은 핑계가 아니겠냐는 분위기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제작자인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의 정지영 감독은 일제강점기 영화검열에 사용됐던 임검석을 언급하며 “현대판 임검석의 부활”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포스터



▲ 영화가 불편한지 아닌지는 극장 아닌 관객이 판단할 문제


몇 가지 쟁점이 있다. 메가박스는 배급사와 협의를 통했다고 했고, 배급사는 통보받았다고 했다. 메가박스는 일부 단체의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를 이유로 들었는데, 그 일부 단체들의 구체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더불어 그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가 어디서 어떻게, 무슨 내용으로 이루어졌는지 또한 공개하지 않았다.


대개 하나의 거래가 파투날 때 갑은 ‘협의’에 따른 것으로, 을은 ‘통보’ 받은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첫번째 쟁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진짜 문제는 메가박스가 상영중단을 결정한 경위의 사실관계에 있다. 요즘 시국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어느 보수단체들이 극장을 습격해 관객과 몸싸움을 벌이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극장 측의 근심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동네 극장도 아닌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이 이미 상영이 시작된 영화의 상영중단을 고려하고 실행할 정도로 ‘강한 항의 및 시위에 대한 예고’가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항의와 예고가 아닌 사실상의 테러 협박이다. 그렇다면 메가박스는 배급사에 상영중단을 통보할 것이 아니라 우선 당국에 수사를 의뢰한 후 해당 단체가 어디인지 밝혔어야 한다. 단지 극장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한 무더기의 글타래들을 가지고 메가박스가 상영중단을 결정했다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다.


메가박스의 불성실한 설명이 더욱 문제가 되는 건, 그와 같은 태도가 영화인들의 과잉 대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정지영 감독이 무려 “현대판 임검석의 부활”이라고 언급했듯이 많은 수의 영화인들이 이번 일을 정치적 의사가 개입된 사실상의 검열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이슈 파이팅에 돌입할 기세다.


메가박스의 결정에 실제 정치적 의사가 개입된 것인지, 혹은 지레 겁을 먹고 바보 같은 일을 벌인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정확한 근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모두 정황에 불과하다. 여기서 온전한 사실관계는 메가박스가 사안에 걸맞은 무게감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상영중단을 결정했다는 점뿐이다. 메가박스의 결정이 아무리 실체를 가진 사실에 근거하고 있더라도, 이런 식의 태도로는 과잉대응이나 음모론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건 지독한 소모전이 될 것이다. 잠시 <천안함 프로젝트>의 소재를 떠올려보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언론시사회 <연합뉴스>


애초 CGV와 롯데시네마는 ‘영화가 불편해서’ <천안함 프로젝트>를 상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다. 만약 이 영화가 당시의 음모론을 그저 복기하고 MB정부를 규탄하는 것에 머무는 수준이라면 나는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한국영화의 안일한 경향과 그 퇴행에 대해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영화가 불편한지 아닌지는 극장이 아니라 관객이 판단할 문제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불편하고 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할 수는 없다. 하물며 가처분신청이라는 전가의 보도마저 비켜나간 마당에, 시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참담한 심정이다.



허지웅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