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남영동 1985’와 ‘26년’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같은 시대를 품은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다음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마지막 순간에 같은 말을 꺼내든다. 용서. 당신의 귀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남자는 세상이 바뀌고 감옥에 간 다음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다음 말한다.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그 사람은 차마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지 못하고 돌아서서 나간다.(<남영동 1985)> 광주에서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이들의 자식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진압군으로 그들의 아비 어미를 살해했던 그 사람은 죄의식과 분노에 사로잡혀 오랜 세월 계획을 세운 다음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앞에서 총을 들고 요구한다. “사과하세요,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그러면 용서할 수 있어요.”(<26년>) 두 말을 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며,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신기하게도, 그 대사를 이경영이 두 영화 모두에서 하면서 이상한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정지영의 <남영동 1985>는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박원상)이 1985년 9월4일 불법 연행된 다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 동안 고문을 받은 실화를 다루고 있다. 이 고문의 중심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이경영)이 자신의 ‘도구’를 들고 ‘수술’을 한다. 우리는 내내 그 수술 현장을 보아야 한다. 강풀의 웹툰 <26년>을 영화로 각색한 조근현의 <26년>(오른쪽)은 몇몇 인물을 빼고 몇몇 상황을 바꾸었지만 원작 만화를 따르고 있다. 광주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던 김갑세(이경영)는 1980년 5월 그날 광주에서 희생당한 유족들의 자식들인 전직 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 금남로 깡패 곽진배, 서대문경찰서 교통경찰 권장혁, 그리고 입양한 아들이자 비서 김주안과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가 진심을 담은 사과를 요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일 계획을 세운다. 


나는 두 영화 사이의 우열을 가릴 생각이 없다. 그건 여기서 무의미한 논쟁이다. 반대로 두 영화가 서로 공유하는 운명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운명? 그렇다. <남영동 1985>를 본 다음 고문이 얼마나 생생한지를 느껴보고 싶다는 댓글이 올라오는 것은 이 영화를 가장 나쁜 방법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근태를 연기하는) 영화배우 박원상이 그걸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은 폭력에 전염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찬가지로 <26년>을 본 다음 그날 광주에서 희생당한 유가족의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이 영화를 가장 냉소적으로 반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 앞에서 그런 영화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과 대답을 모두 바꾸고 싶다. 질문. 당신들은 왜 영화를 통해서 1980년대를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대답. 아니요, 우리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뽑은 다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들의 선택의 역사. 


이때 두 영화가 필사적으로 공유하는 것은 폭력의 비대칭성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한 폭력에 대해서 그들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맞서지 않으려고 안타까우리만큼 애쓴다. 두 영화의 불만족스러운 점은 종종 연극적이거나(<남영동 1985>) 과도하게 장르적으로 이끌리면서(<26년>) 역사의 네트워크들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며, 두 영화의 훌륭한 점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영동 1985>




<26년>




<남영동 1985>는 섣부른 화해의 제스처나 정의의 실현 대신 죽은 김근태가 산 우리를 두 눈을 부릅뜨고 맹렬하게 지켜보는 시선으로 끝난다. <26년>의 원작 웹툰은 방아쇠를 당긴 다음 그냥 거기서 끝난다. 영화는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난 다음 ‘오늘 아침’ 그분께서 광화문네거리를 지나가는 것을 지켜본다. 


금남로에서 시작해서 청와대가 바라다보이는 광화문에서 끝날 때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여기에는 권선징악이 없으며, 정의의 승리 따위도 없다. 그때 용서의 자리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나는 두 영화 앞에서 당신의 분노가 어디서 오는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그런 다음 여기서 용서와 분노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요구하는 거리에 두 영화가 끼어들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고 한다. 그 둘은 하나가 아니다. 이때 분노는 불만스러울 것이며, 용서는 망설여진다. 불만족과 망설임 사이에서 죽은 자들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이때 살아남은 자들은 셈을 치러야 한다. 어떤 셈? 


우리는 1980년대를 부정하면 안된다. <남영동 1985>와 <26년>은 부채의 계산서이지 그 효과가 아니다. 우리는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 그 효과를 가로막는 그 모든 것과 싸워야 한다. 당신은 그럴 충분한 용기가 있는가? 고작해야 계산서가 잘못되었다고 지금처럼 긴급한 순간에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간단하지만 단호한 대답. 12월19일 우리들은 그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행위를 통해서 현실에서만 그 효과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비판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 행위의 결과를 향해서여야만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두 영화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 운명을 잠시 동안만 시적으로 음미하시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갑자기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가 1944년에 쓴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