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박찬욱의 ‘스토커’는 할리우드에 보내는 예고편 정성일 | 영화평론가·감독 “당신은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애써 노력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요.” 그러자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러나 나는 장소로서의 할리우드에 대해서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 관심은 스튜디오에 들어가 일하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이 말은 박찬욱이 아니라 앨프리드 히치콕이 1939년 캘리포니아에 도착해서 를 찍은 다음 트뤼포의 질문에 한 대답이다. 아마도 이 말을 박찬욱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심정으로 몇 번이고 이 말을 새겨가면서 박찬욱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문제를 생각했을 것이다. 는 박찬욱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찍은 첫 번째 영화이다. 인디아(미아 바시코프스카)가 18살이 되던 날, 아버지.. 더보기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나는 정말 스파이 영화를 본 것일까 정성일 | 영화평론가·감독 나는 스파이라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고 스파이 친구도 없다. 그러므로 스파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스파이에 관한 소설과 영화들에서 얻은 작은 지식들뿐이다. 종종 나는 스파이들의 세계가 그저 음모론의 일부로 꾸며낸 환상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의심을 하기도 하였다. 나이가 든 다음 좀 더 많은 스파이 소설을 읽었다. 그런 다음 한 가지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스파이는 운명이나 재능이 아니라 이것도 하나의 직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운명처럼 생각하거나 액션영화들은 종종 이걸 재능처럼 다룬다. 가끔 어떤 주인공들은 자신을 그렇게 믿는다. 이때 딜레마가 생겨난다. 왜 어느 쪽을 선택해도 자기에게 결정권이 없느냐는 것이다. 류승완의 (사진)의 무대 베를린... 더보기
‘남영동 1985’와 ‘26년’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같은 시대를 품은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다음 서로 다른 자리에서 마지막 순간에 같은 말을 꺼내든다. 용서. 당신의 귀를 의심할지도 모른다.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남자는 세상이 바뀌고 감옥에 간 다음 자신이 고문했던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다음 말한다.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그 사람은 차마 그의 머리에 손을 올리지 못하고 돌아서서 나간다.( 광주에서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이들의 자식들과 함께, 그 자리에서 진압군으로 그들의 아비 어미를 살해했던 그 사람은 죄의식과 분노에 사로잡혀 오랜 세월 계획을 세운 다음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앞에서 총을 들고 요구한다. “사과하세요,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그러면 용서할 수 있어요.”() 두 말을.. 더보기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광해’에 입장료 낸 천만이 투표함에도 표를 넣을까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지난 주말(10월20일)까지 (사진)를 본 관객은 1천 79만 6095명이다(영화진흥위원회 통계). 에 이어서 올해 두 번째 천만 관객영화이며, 역대 한국영화 중 일곱 번째 천만 영화이다. 이 숫자의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23일 오후 6시36분 남한 인구가 막 5천만명이 넘었다. 말하자면 남한 전체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보았다는 뜻이다. 나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이 숫자를 설명해보고 싶다. 현재 대통령인 이명박씨는 1천 149만 2389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씨는 1천 201만 4277표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다. 투표는 입장료를 내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입장료를 내고 보아야 한다. 자.. 더보기
[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다시 말하기 시작한 ‘피에타’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김기덕의 열여덟 번째 영화 를 보았다. 고리대금업자를 대신해서 청계천 골목에 가까스로 살고 있는 채무자들에게 신체포기각서를 내세워 보험금을 타내는 강도(이정진)는 ‘무자비’하게 자기 일을 해나간다. 그런 강도 앞에 갑자기 자기를 ‘엄마’(조민수)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미쳤다고 생각하고 때리고 내쫓고 학대하지만 그녀는 자기를 용서하고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한다. 강도가 ‘엄마’를 받아들일 때 갑자기 ‘엄마’가 사라져버린다. 자기가 괴롭힌 채무자들 중의 누군가가 ‘엄마’를 납치했을 것이라고 믿은 강도는 자신의 채무자들을 찾아다니며 ‘자비’를 호소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무자비’와 ‘자비’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사실상 영화는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만일 이전까지 .. 더보기
공허한 퍼포먼스 ‘다크나이트 라이즈’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한참을 망설인 다음 이 영화를 이야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왜 망설였을까. 무언가 이 영화는 병들었기 때문이다. 병든 영혼과 가짜 육신 사이의 거래. 그 안에서 어떤 일관성도 보증받지 못한 채 정의의 이름으로 신체적 우울증을 치료하려는 폭력적인 힘의 예찬. 아무리 그래봐야 결국 실패할 것이다. 정의는 무능하고, 도덕주의적 분노는 무력하며, 그 사이에서 스펙터클한 투쟁들은 소란스럽긴 하지만 어둠 속에서 냉소적인 대상이 된다. 나는 니체에 관한 수사학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대안도 없이 21세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파괴된 영웅 서사를 음울하게 노래한다. 영웅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괴물이란 누구인가, 는 사실상 같은 질문이다. 이때 둘 사이의 경계가 애.. 더보기
최동훈 감독표 종합선물 ‘도둑들’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스포일러가 잔뜩 있습니다. 저는 이미 경고했습니다.) 지금 막 도둑질에 성공한 ‘뽀빠이’(이정재)는 경찰에 꼬리를 밟히면서 네 명의 동료 ‘씹던 껌’(김해숙), ‘예니 콜’(전지현), ‘잠파노’(김수현), 그리고 지금 막 출감한 ‘팹시’(김혜수)와 함께 마카오에 간다. 거기서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마카오 박’(김윤석)을 만나 홍콩의 ‘도둑떼’ 첸(임달화), 앤드류(오달수), (위장 잠입한 경찰) 줄리, 조니와 합류한다. 그들은 카지노에서 300억달러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쳐서 ‘손등의 나비문신만 보아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홍콩의 위험한 장물아비 웨이 홍에게 팔 생각이다. 물론 잘될 리가 없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절반이다. 최동훈은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더보기
시치미 뚝 떼고 돌아온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수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연대기 중의 하나. 1962년 8월 ‘마블 코믹스’에서 편집장 스탠 리의 주도로 연재를 시작한 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벌써 20년도 넘게 떠돌던 할리우드 뉴스였다. 처음에 거명된 사람은 제임스 캐머런이었다. 를 만든 다음 특수효과를 동원해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에 은 멋진 아이디어처럼 보였다. 그때는 아직 영화사에서 디지털 특수효과가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놀라운 것은 그때 은 제임스 캐머런이 3D로 준비했던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제임스 캐머런은 곧 기획을 포기하고 를 만든 다음 을 완전히 버렸다. 그 다음은 리들리 스캇과 폴 베호벤이 거명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스튜디오 사이에서.. 더보기
배설의 갱뱅 ‘돈의 맛’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작년 새해가 막 시작되었을 때 임상수를 만났다. 다음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자 “를 찍었으니 이제 을 찍어야지요. 아, 물론 그대로 제목을 할 생각은 없고”라고 대답했다. 일 년 반이 지나서 ‘다음’ 영화 을 보게 됐다. 이 정확하게 의 속편은 아니지만 두 편의 영화는 느슨하게 이어져 있다. 영화 속에 동일한 이름을 가진 (의) 어린 딸 나미가 어른이 되어서() “집안에서 불에 타 죽은 하녀”를 기억해낸다. 혹은 ‘下男’ 주영작이 머리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채 폭행을 당할 때 홈 시사실의 커다란 스크린에는 김기영의 가 상영되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상수가 김기영의 에 존경을 바치거나 혹은 조롱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는 김기영의 1960년 ‘이후’ 부르주아들.. 더보기
전쟁 다큐 ‘아르마딜로’가 묻는다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1895년 12월28일 영화가 발명된 다음 언제나 전쟁이 벌어지는 곳에는 영화가 있었다. 아마도 이전의 어떤 다른 예술도 하지 않았던 역할을 영화가 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전쟁을 방문했고, 전쟁은 영화를 전시했다. 그 둘은 다소 비스듬하게 서로에게 기대어서 닮아갔다. 미디어 학자인 폴 비릴리오는 총과 카메라의 유사함에 대해서 지적했다. 둘 모두 목표물을 정한 다음 그 목표물을 자기의 초점 거리 안으로 끌어당겨서 그것을 ‘붙잡는’다. 전쟁은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이며, 영화는 목표물을 보여주는 것이다. 차이는 전쟁이 실용적이라면 영화는 미학적이다. 그러나 비유적인 표현이 끝난 다음 전쟁과 영화가 실제의 장소에서 겹치게 되면서 이미지의 공급이 군수품의 공급과 등가물이 되어 군사적 지.. 더보기
사내답게 울게 할 ‘마이 백 페이지’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나는 남자가 눈물 흘리는 걸 보는 게 좋아요, 진짜예요. 제대로 울 줄 아는 남자가 사내답다고나 할까.” (나는 ‘조금’ 영화 속의 대사를 내 기분에 맞추어 바꾸어 보았다) 지금 막 밥 라펠슨의 를 보고 나온 다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 니컬슨이 우는 모습을 보고 여고생 구라다 마코는 정치적인 주간지 기자 사와다에게 그렇게 말한다. 제대로 울 줄 아는 남자. 사와다는 아직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는 그와 비슷한 말을 한 번 더 듣는다. 사와다가 취재 중인 ‘사이비’ 직업혁명가 우메야마는 에서 맨 마지막 장면 더스틴 호프먼이 존 보이트에게 안겨 우는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그 장면은 너무나 강렬했어요.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길 때 나는 무섭고, 정말 무서워서, 울고 싶.. 더보기
놓치면 후회할 '디센던트' 영화들이 너무 나쁘다. 종종 영화관에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나쁘다. 때로 환호에 이끌려 가보면 거기서 재앙과 마주친다. 그 소란의 와중에서 내가 해야 하는 임무 중의 하나는 당신이 허접한 제목들을 들춰보느라 놓친 영화를 다시 일깨워주는 일이다. 나는 올해 당신이 알렉산더 페인의 (사진)를 놓친다면 후회할 것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먼저 줄거리. 맷 킹(조지 쿨리니)은 하와이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이다. 그런데 아내가 갑작스러운 보트 사고로 코마상태의 식물인간이 되었다. 의사 말로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단다. ‘이제까지 아내에게 잘 대하지 못한 것이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라고 반성하면서 어린 둘째 딸을 데리고 기숙사의 말 안 듣는 첫째 딸을 만나러 갔다가 어머니와 그동안 불화를 겪고 있던 것이 아내가 다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