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최동훈 감독표 종합선물 ‘도둑들’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스포일러가 잔뜩 있습니다. 저는 이미 경고했습니다.) 지금 막 도둑질에 성공한 ‘뽀빠이’(이정재)는 경찰에 꼬리를 밟히면서 네 명의 동료 ‘씹던 껌’(김해숙), ‘예니 콜’(전지현), ‘잠파노’(김수현), 그리고 지금 막 출감한 ‘팹시’(김혜수)와 함께 마카오에 간다. 거기서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마카오 박’(김윤석)을 만나 홍콩의 ‘도둑떼’ 첸(임달화), 앤드류(오달수), (위장 잠입한 경찰) 줄리, 조니와 합류한다. 그들은 카지노에서 300억달러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쳐서 ‘손등의 나비문신만 보아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홍콩의 위험한 장물아비 웨이 홍에게 팔 생각이다. 물론 잘될 리가 없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절반이다.

 

최동훈은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각자 특별한 기술을 가진 도둑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모여들지만 목적은 서로 다르다. 잘 알려진 공식. 목표와 목적의 불일치. 먼저 힘을 합치고 그런 다음 서로 각자의 이유로 배신을 한다. 질문. 이 간단한 이야기가 왜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일까. 대답. 우선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무려 10명이나 되는 ‘도둑떼’를 처리해야 한다. 아쉽게도 최동훈은 제일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 그는 패를 뒤섞는 대신 쓰고 나면 망설이지 않고 버린다. 일단 홍콩에서 두 명을 죽이고, 두 명은 경찰에 넘긴다. (그런 다음 영화는 그들을 완전히 잊어버린다.) 하지만 이야기가 홍콩에서 부산으로 넘어오면서 전반부에 없던 웨이 홍이 등장하자 갑자기 영화는 이제까지 자기가 하던 이야기를 잊어버린 것처럼 다른 액션영화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전반부와 후반부 어느 쪽을 더 좋아할지는 각자의 취향이지만 문제는 이 두 개의 이야기를 가까스로 연결하기 위해서 영화가 둘 사이의 공백을 사건에서 찾는 대신 인물들 사이의 과거의 심연 속에서 찾으려고 스스로 플래시백의 재구성으로 빠져들 때 생겨난다.

 

물론 이건 최동훈이 가장 잘하는 방법이다. 그는 사실상 같은 구성을 계속해서 변주하고 있다. 사건 속의 사연의 재구성.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을 찍었을 때 그는 이미 자기의 영화적인 방법을 모두 보여주었다. 그는 사건을 전개하는 쪽보다는 이미 벌어진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다. <도둑들>은 그걸 좀 더 단순하게 만드는 대신 관객과의 두뇌게임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액션의 스펙터클을 가져다놓았다. 뭐랄까, <타짜>를 마카오와 홍콩, 부산을 무대로 <전우치> 버전으로 다시 찍은 느낌이랄까. 이때 <도둑들>은 최동훈의 영화들의 장점과 실패를 고스란히 모두 끌어안은 종합선물처럼 보인다.

 

 

영화 '도둑들'의 스틸컷 ㅣ 출처:경향DB


▲ “<도둑들>에는 두 개의 구조가 있다.
하나는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들 사이의 감정의 연쇄 망이다.”

 

이미 <도둑들>을 본 많은 동료들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자질구레한 에피소드에 사로잡혀서 ‘도둑질’의 플롯이 엉성하고 앙상블이 무너졌으며 게다가 ‘큰 한 방’이 부족하다고 충고한다. 나는 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태는 정반대이다. 신기하게도 등장인물들 중에서 300억달러나 하는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도둑은 한 명도 없다. 자, 이걸 플롯의 미끼라고 말하는 건 간단하다. 핵심은 이것이 미끼라면 덫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같은 말의 다른 판본. 그들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태양의 눈물’이라는 틀린 선택으로부터 교훈을 배워야 한다. 이때 사랑이 덫이라는 생각을 놓치면 안된다. 만일 도둑들이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오로지 ‘태양의 눈물’을 훔치는 데만 최선을 다했다면 그들 모두는 해피엔딩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게임에 불확실함이 도입된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이 제멋대로 운동하기 시작한다. 예상치 않은 변수의 개입. 물론 그건 그들 사이의 과거이며, 그들 사이의 감정이다.

 

나는 최동훈의 관심이 좀 애매하게 느껴진다. 그때 여기에서 기다리는 해답은 무엇인가. 사실상 이들의 감정은 변수라기보다는 도둑질 속에서 문득 발견한 일종의 ‘인간적인’ 단절이다. <도둑들>에는 두 개의 구조가 있다. 하나는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게임이고, 다른 하나는 인물들 사이의 감정의 연쇄 망이다. 이 둘을 하나로 겹치는 순간 갑자기 두 개의 구조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이때 우리는 실패가 사실상의 성공이라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데는 실패(할 뻔)했지만 마음을 훔치는 데는 성공한다는 역설. 그러나 최동훈은 이상할 정도로 이들 사이의 심리적 게임을 잘 처리하지 못(하거나 혹은 알지 못)한다. 혹은 외면하려 애쓴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도둑들>에서 가장 이상한 장면은 첸과 ‘씹던 껌’이 일본인 부부로 위장했다가 진정한 부부애를 느끼면서 첸이 기꺼이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씹던 껌’은 그와 함께 죽음의 길에 동반할 때다. 그들 사이의 사랑의 교환이 왜 갑자기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에는 그들의 죽음이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영화 안에서 이 장면은 몹시 거북해진다. 반대로 이 장면이 ‘예니 콜’을 위해서 스스로 경찰에 체포되는 ‘잠파노’의 행위와 거의 동시에 일어날 때는 너무 순진해서 어리둥절해진다.

 

<도둑들>이 무늬는 케이퍼 장르이고 그 안에서 하이스트 무비의 규칙과 홍콩 느와르를 따르지만 아무리 말을 바꾸어도 등장인물들의 심연의 공백 속에 흐르는 건 감상에 가득 찬 멜로드라마이다. 이게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은 최동훈이다. 그래서 이들이 부산에서 웨이 홍을 만날 때 이미 복잡할 대로 복잡해진 심리적 과정을 무턱대고 장대하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과장된 액션장면과 맞바꿔 친다. 하지만 웨이 홍의 진정한 임무는 결국 무엇인가. 다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건 마카오 박과 팹시가 서로 진정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역설적으로 말하면) ‘죽음의 운명’을 무릅쓰고 부산에 온 것이 아니던가. 자, 여기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요부가 기다리는 하드보일드의 냉소적 낭만주의의 밤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가 기다리는 멜로드라마의 집이다. 최동훈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시간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