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미원’에 대한 오해

냉면에 유별난 관심을 가진 나는 종종 그 국수의 ‘원류’에 대한 호기심으로 북한 책을 본다. 냉면은 역시 평양이 본고장이고, 많은 그쪽 출판물들이 냉면을 다룬다. 어떤 책에는 ‘민족의 자랑’이라는 서술도 해놓았고, 또 다른 책에는 “경애하는 김일성 수령께서는 냉면을 널리 인민이 먹을 수 있도록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교시했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나는 역시 요리법에 흥미가 있는데 궁금한 건 도대체 진짜 북한 냉면은 뭘로 만드느냐 하는 점이었다. 꿩고기네, 동치미네 하는 조리법 끝에서 나는 뜻밖의 재료를 발견하고 웃고 말았다. ‘맛내기 조금.’



두말할 필요 없이 ‘미원’을 이르는 용어였다. 뭔가 우리보다 자연적이고 환경친화적일 것 같은, 그래서 공산품을 최대한 배격할 것 같은 북한의 요리계도 결국 이 ‘마법의 가루’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국가에서 펴낸 공식 책자에서 말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수령도 볼 책에 인공조미료를 넣으라고 ‘권장’하는 요리법을 실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의문은 북한과 요리법이 많이 공유되고 정치적으로도 친밀한 중국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중국의 식당에선 종종 식탁 위에 그 조미료 가루를 버젓이 올려놓는다. 어떤 경우는 친절하게도 요리를 찍어 먹으라고 마치 설탕이나 소금처럼 종지에 따로 담아 내주곤 한다. 한마디로 저쪽 동네에선 그 조미료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거나 적어도 거의 없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가 그 물질에 보이는 엄청난 거부감과는 사뭇 다른 저 태도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아는 한 과학자는 인공조미료 문제에 별난 견해를 갖고 있다. “미원이 지구상에 공헌한 게 만만치 않아. 우리가 원하는 감칠맛을 일일이 고기나 채소, 해물에서 뽑으려면 엄청난 양이 필요할 거야. 간단히 봉지를 뜯고 뿌리기만 하면 되는 그걸 왜 타박해?”


(경향신문DB)



농담처럼 말했지만 뼈가 있는 논리였다. 실제로 시중의 논란과는 달리 주류 과학에서는 인공조미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쓰느냐 안 쓰느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를 넘어 거의 공공의 적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다. 오죽하면 한 방송에선 그 물질의 사용 여부를 기준으로 ‘착한식당’이라는 칭호를 주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나는 과학자가 아니어서 인공조미료의 화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이런 정서는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늘 깊은 교훈을 준다.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추는 한동안 ‘먹을 수 없는 화초’로 관상용이었으며, 서양에서 토마토는 악마의 열매로 치부되기도 했다. 인간의 역사는 혐오라는 끔찍한 미신으로 피투성이의 길을 걸었다. 그건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과연 인공조미료, 그러니까 미원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거부감은 과연 온당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