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마트에 빼앗긴 것들

박찬일 | 음식 칼럼니스트



 

내가 주로 일하던 합정역 근처에선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신규 출점을 반대하는 항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결국 홈플러스는 15개 물품의 판매를 제한하는 조건으로 문을 열었다(그 물목에 내 평생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소 등뼈와 석류가 들어 있다는 이야기는 논외로 치자). 누구나 예상하던 수준의 결말이었다. 직접당사자인 인근 재래시장 상인뿐 아니라 시민사회의 여러 집단이 함께 싸운 결과가 그랬다. 


 



우리는 마트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온 것인지도 모른다. 매주 집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전단은 우리 욕망을 부추긴다. ‘한정 판매’ 하는 상품을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들여놓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게 만든다. 마트 등장은 오래된 일이 아니지만, 우리의 생애가 마트에 의존하는 몫은 문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다들 휴일의 중요한 시간대에 마트에 가서, 송아지라도 집어넣을 만한 크기의 카트를 자발적으로 민다. 내가 내 밥 사먹고 왜 남의 회사 카트를 ‘밀어주고’ 있는지 자각하는 경우는 없다. 


계산대에서 카트에 가득 든 물건을 무심하게 컨베이어벨트에 올려놓는 걸 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안 먹어도 그만인 상품이 대부분이다. 전단과 텔레비전 광고와 화려한 디스플레이에 현혹되어 집어든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그걸 구매하고, 돈을 지불한다. 우리는 카트의 수유를 받는 존재인 것 같다. 마트라는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다. 콩나물무침을 어떻게 하면 아삭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는지 알려주는 대화는 더 이상 없다. 꽁치가 싱싱한 제철은 언제인지, 왜 봄 꽃게는 알배기고 가을 꽃게는 살집이 좋은지 알고 싶으면 스마트폰을 보는 게 빠르다. 




100년은 넘게 살았을 고목의 둥치로 만든 도마에 탕탕, 고등어를 내리치며 그런 정보를 일러주는 전대 찬 아저씨도 우리는 이제 잊었다. 모두 잊었다. 돼지비계를 덤으로 집어주는 정육점 털보아저씨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그가 임시직으로 어느 마트의 정육코너에 들어갔다는 풍문만 들려온다. 우리는 조도 높은 시렁에 잘 진열된 상품을 본다. 그러나 그걸 집어들고 냄새를 맡지 못한다. 플라스틱 랩으로 단단하게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포장은 우리의 관능과 오래된 습관을 상품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정해준 가격에 그저 신용카드를 내밀도록 훈련된다. 냉정한 가격표를 보고, 산수를 할 뿐이다. 내가 아는 ‘구매행위’는 그런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는 상인과 반갑게 잡담을 나누고, 좋은 상품을 자랑하는 상인의 표정을 느끼고, 누군가를 먹일 기쁨에 가득 차서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제 그저 카트를 민다. 그러면서 동시에 덧없는 한 생애도 함께 밀고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