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호스피털리티’와 버선발

박찬일 | 음식 칼럼니스트



 

한번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고구려호텔에 간 적이 있다. 그 호텔의 서비스야 다들 알아준다. 과연 깍듯한 태도가 잘 훈련받았다는 인상을 풍겼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이 촌티는 그만 돌아갈 곳을 잃어버렸다. 여기저기 헤매다가 나를 담당했던 웨이터를 만났다. 이제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겠다는 반가운 마음에 나는 환하게 웃었는데, 그는 별로 반갑지 않은 것 같았다. 얼굴에 빗금을 쫙 긋더니 “이곳은 손님이 오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너무도 단호한 태도에 나는 오금이 저려 아까 테이블에서 수프를 소리나게 들이켠 때문일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한복을 입고 온 것이 아닌가 내 옷차림을 살펴보기까지 했다. 


 

알고보니 내가 헤매다 당도한 곳이 그들이 음식을 내오고 들여가는 ‘서비스 통로’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손님 구역과 직원 구역을 엄격하게 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간이라도 내줄 것처럼 친절하던 ‘손님 구역’과 달리 그토록 돌변한 건 무슨 까닭일까 싶었다. 물론 한 개인의 문제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이 나라의 서비스 좋다는 곳에서는 대개 이런 대우를 받는다. 이를테면, 공식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매우 친절하지만 조금만 ‘매뉴얼’에서 벗어나면 평소 무뚝뚝한 우리식 표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명품에 얼음 주전자의 물방울이 두어 방울 떨어졌다고 가방 바꿔내란 손님도 황당하지만, ‘호스피털리티’를 머리로만 이해하는 서비스업도 참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호스피털리티라는 말이 크게 유행이다. 아예 관광대학에서는 이 이름을 붙인 대학원이나 MBA과정도 있다. 관련 서적도 쏟아진다. 안락한 서비스를 하겠다는 정도에서 이제는 거의 영혼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완전한 평화를 제공하겠다는 데까지 이른다. 호스피털리티야말로 보이지 않는 비즈니스의 완결판이라고 일컫는다.





이쪽 업계의 한 선배는 서비스 잘하기로 알아주는 유명인이다. 그는 좀 엉뚱한 데가 있어서 농담도 잘한다. “진짜 서비스는 상대방이 ‘야, 저 친구가 내게 개인적으로 마음이 있어서 이렇게 잘해주는가 보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는 게 진짜다”라거나 “제대로 된 호스피털리티는 서글프게도 우리나라에선 룸살롱이 최고다. 그래서 엄청난 이권이 걸린 비즈니스 접대는 다수가 그런 곳에서 이루어지지 않나”고까지 농담한다. 그렇지만 그가 정색하고 내세우는 한국식 호스피털리티가 있다. 바로 ‘버선발 서비스’다. 장모가 결혼하고 처음 들른 사위 맞듯, 첫 휴가 나온 아들을 맞는 어머니처럼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기는 그런 서비스 말이다. 그 서비스에는 어떤 사심도, 냉정한 계산도 없다. 그저 좋아서 반가워서 기뻐서 하는 서비스다. 한류 붐을 타고 관광객이 몰려온다는데, 우리 서비스는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호스피털리티니 뭐니 거창한 거 빼고 버선발이나 신고 나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