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식탁에서 하는 도덕 공부

4월11일자 경향신문에는 우울한 기사가 하나 실렸다. 남극해와 아프리카에서 우리 어선이 남획으로 국제적인 물의를 빚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미국은 한국이 원양어업에 대한 국내 규제를 강화하지 않으면 무역제재를 가하겠다는 경고도 내놨다. 사실 이 문제는 그다지 간단치 않다. 좋은 장비로 무장한 강대국 중심의 수산업 패권, 어족 고갈과 쿼터제로 궁지에 몰린 원양어업의 현실, 더 많은 수산물을 먹으려는 인간의 욕망,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식량 주권 문제까지 얽히고설켜 있다. 



비단 수산물뿐 아니라 국력이 커지고 있는 주요국들, 그중에서도 중국에서 유제품과 고기를 포함한 수산물 소비가 폭증하는 사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도 여기에 포함된다. 좀 다른 얘기이지만 중국의 소비 증가 문제에 관해서 걱정하는 인간들은 참 비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내가 아는 중국에 관한 최악의 우려는 “전 중국인이 화장지를 쓰게 되면 지구의 열대우림은 금세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따위의 치사한 견해들이다. 중국인들은 화장지를 쓸 권리가 없는가. 중국의 어린이들이 우유 소비를 늘리는 것은 지구를 위협하는 행위인가. 8기통 자가용 타면서 버스 타는 인간들이 환경오염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것과 진배없다. 설사 그들의 욕망이 지구의 안녕에 위협적이라고 하더라도, 매일 화장지와 우유를 다량 소비하는 우리 같은 인간들은 비난의 대열에 있을 자격이 없다.


하여튼 지금 지구는 더 많은 생산물을 소비하려는 욕망에 불탄다. 3.7%. 한국의 식량 자급률에 관한 어느 통계다. 대략 이 정도에서 움직인다. 요리를 하다보면 “야, 이런 것까지 수입해서 먹어야 하나” 싶을 때가 있다. 우유나 화장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물건들이다. 문어가 비싸지니 북아프리카산이 수입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지역인 세네갈에서 갈치를 사들이거나 잡아와서 시장에 푼다. 문어나 갈치는 우리 밥상에 흔하게 오르는 생선이지만, 값이 비싸지면 덜 먹어도 되는 식품이다. 최근에는 마트에서 심지어 이런 광고까지 한다. 


‘항공으로 운송한 동남아 주꾸미 입하!’





우리가 언제부터 주꾸미를 그렇게 먹어야 했던 것일까. 굳이 항공유를 써가며, 냉장수송을 위해 다량의 화학에너지를 불태워가며 먹어야 하는 수산물일까. 있으면 먹고, 없으면 참는 미덕은 어디 간 것일까. 기사에서 거론된 한 업체는 남극해에서 ‘메로’(사진)라는 생선을 규정량보다 훨씬 많이 포획해서 갈등을 일으켰다. 메로라는 생선은 심해어의 일종으로 쫄깃하고 기름져서 맛있는 생선이다. 하지만 우리가 메로를 먹지 않는다고 해서 식생활에 어떤 문제를 가져오는 것일까. 메로를 한번이라도 먹어본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 이미 당대의 세기는 먹는 문제에서 철학과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생존의 데드라인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미식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번쯤, 식탁에도 도덕이 필요하다는 일침이 필요한 시기다.



박찬일 |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