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제철 음식’의 추억

요리사들은 제철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음식의 맛은 거개 재료에서 오게 마련이고, 제철의 맛을 이기기 어려워서다. 4월 중순의 개두릅(엄나무순)처럼 한 보름 잠깐 왔다가 가는 재료를 찾아 안테나를 세워두는 요령이 필요하다. 제철 달력을 만들어두고, 생산자와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다 결실을 맺지는 못한다. 여전히 우리 관습은 정해진 메뉴에 익숙해 잠깐 나왔다가 들어가는 제철 재료로 특별음식을 만들면 반응이 신통치 않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거부감 내지는 불안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식당에 대한 불신도 한몫할 것이다. 믿고 먹는 문화의 부재랄까,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필자도 제철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지만, 아직 물정에 어둡다. 그래서 종종 황당한 정보에 휘둘리기도 한다. 어느 포털에 더덕은 이 계절에 제철이라는 말을 듣고 생산자에게 문의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땅이 다 녹지도 않았는데 뭔 더덕을 찾소?”

요새는 이른바 노지 재배가 많이 줄었다. 출하를 조절해 수익도 늘리고, 농사의 효율에 하우스 재배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마냥 옛 제철만을 바라는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딸기가 그렇지 않은가. 겨울 딸기를 보고, 꼭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5월의 딸기밭 축제를 떠올린다. 화사한 봄, 딸기밭에서 벌어졌던 미팅의 추억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노지 딸기는 이제 거의 보기 어렵다. 대신 하우스재배 딸기의 장점이 많다. 대개 농약도 거의 치지 않고 기른다. 뒷사정이 있겠지만, 이 계절에 벌써 참외를 값싸고 싱싱하게 먹게 된 것을 마냥 타박할 수만도 없는 것이다. 옛날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게 마련이고 그걸 수용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세상이 다 변하는데 농사는 늘 하늘 쳐다보고 하라고 하는 것도 도시민의 욕심 아닌가.

그래도 바닷속 사정까지 다 우리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부안에 유명한 조개를 먹으러 갔던 지인이 화를 낸 적이 있다. 너무도 맛이 없더라는 것이다. 철도 아닌 때 가서 조개를 찾은 잘못은 없는가.




인천 앞바다는 한때 거대한 조개밭이었다. 지금 동막이니 옥련동, 연수동 근처가 매립되기 전에는 조개가 무진장 나오는 갯벌이었다고 한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인천 쪽에는 조개 김장이 있었다. 한 해 중에 가장 조개가 맛있는 지금 조개 저장을 해두는 일이었다. 맛있는 조개를 사서 삶은 후 그 살과 즙을 보관해두고 몇 달을 즐겼다는 것이다. 간척사업으로 조개밭은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이 봄이면 어김없이 맛을 품은 조개를 만날 수 있다. 조개탕도 끓이고, 이탈리아식으로 바지락 스파게티도 만들어 드시길. 간이 안 좋은 분들에게 조개 달인 물이 좋다니, 보양과 미식을 함께 즐길 수도 있겠다.

4월에는 바다를 잘 아는 친구와 바지락을 보러 가기로 했다. 화성 궁평항 쪽에 좋은 조개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단물이 가득한 조개탕에 소주를 마시면서 낙조를 보고 올 것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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