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밀라노의 한국식 치킨

이탈리아에 있다. 음식에 관해 몇 가지 재미있는 것들을 보고 있다. 거리에 인기 있는 식당은 상당수가 외국식이다.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본디 중국 음식 말고는 외국식을 거의 먹지 않는 나라가 이탈리아인데 말이다. 간단한 스낵류에 대한 인기가 대단하다. 어제자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머리기사로 ‘청년실업률이 42%를 기록했다’고 실었다. 청년들이 돈이 없으니, 더 싼 음식을 찾는 모양이다. 전통적인 피자집 대신 반값도 안되는 외래 음식을 먹는다. 케밥과 중국식 스파게티는 햄버거 값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유행도 가세했다. 일본식 간이식당이 많다. 중국인 요리사들이 전업해서 무거운 고기 칼 대신 날카로운 ‘사시미 나이프’를 들고 연어를 썬다. 아직은 고작 연어이지만 유럽인들이 날생선을 먹는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맛이야 물론 형편없다. 튀김은 눅눅하고 초밥은 재앙 수준이다. 그래도 이탈리아 청년들이 줄을 선다. 단돈 10유로도 안되는 돈에 한 끼를 때우고 ‘트렌디’한 외국 음식을 즐기는 재미를 구가하는 셈이랄까. 테이크아웃으로 초밥을 가져가는 젊은이들도 많다. 주방을 보니 일본산 자동 초밥기계가 연신 밥 덩어리를 토해내고 있다.

놀랍게도 ‘한식’도 인기가 있다. 아쉽지만 전통 한식당에 대한 인기가 아니다. 한식세계화를 아무리 부르짖어도 유럽인들이 신선로와 구절판, 김치찌개를 시키지는 않는다. 이탈리아인들이 좋아하는 ‘한식’은 좀 엉뚱하다. 밀라노 중앙역 옆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로 옆에 닭튀김을 파는 스낵이 있다. 중앙아메리카 혈통의 요리사가 연신 닭을 튀긴다. 바로 그 닭이 ‘한식’이다. 미국 쪽에서 요리법을 가져온 것 같다. 한국식 치킨이 미국으로 진출한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한국계 뉴욕 요리사 데이비드 장의 식당에서는 두 마리 60달러라는 비싼 값에 한국식 치킨을 판다고 한다. 그것도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데, 반응이 난리가 아니란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미국 쪽 사이트에 한국식 치킨 만드는 법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을 정도다. 물론 MSG와 간장, 마늘과 파 같은 향신료로 맛을 내는 게 한국식 치킨의 중요 요소다. 이런 자극적인 맛은 아마도 새로운 세기 전체를 풍미할 것 같다.




그 밀라노 치킨집은 맵고 바삭한 치킨을 판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물결무늬’ 튀김옷도 있어서 깜짝 놀랐다. 종이그릇에 닭을 담고 밥을 곁들여낸다. 탄수화물을 보강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요리사는 물론 손님들도 그 치킨이 한국식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비록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엄연한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인데 그 원류를 아무도 몰라주는 이 아이러니라니. 아비이면서도 아비라고 말을 못하는 코미디라니. 왜 떡볶이는 그렇게 밀어도 안되고 프라이드치킨은 되고 있는지 누가 대답 좀 해주면 좋겠다. 우리 음식에 어떤 매력적인 요소가 있는지 우리도 스스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초밥처럼 ‘젠(禪)’적인 건강미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프라이드치킨처럼 자극적이면서도 바삭한 물리적 쾌감까지 있는 음식은 어떤 것인지. 이 정부에서도 한식세계화 사업을 진행할 모양이다. 당국자는 밀라노의 프라이드치킨을 먼저 먹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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