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한국식 숟가락질의 미덕

나는 뒤늦게 이태리에서 요리를 배웠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몇 가지 재미있는 소감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양식을 만드는 요리사들도 젓가락을 쓴다는 사실이었다. 파스타를 볶을 때 소스와 면이 잘 조화되도록 흔들어야 하는데, 이때도 집게 대신 젓가락을 썼다. 다 만든 면을 접시에 놓을 때도 젓가락은 아주 유용했다. 면을 사리 지어 한번에 멋지게 휘감아 척, 접시에 모양을 냈다. 서양 같으면 국자를 대고 따로 큰 포크를 써서 모양을 잡아야 한다. 두 손을 써야 하므로 한 손에 젓가락을 잡아 그 일을 끝내는 한국인에 비해 훨씬 느리게 마련이다. 또 작은 재료를 접시에 담을 때 서양 요리사들은 핀셋을 쓰는 데 비해 한국인들은 능숙하게 젓가락으로 그 일을 해냈다. 늘 쓰는 도구이므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으니 감탄하는 나를 그들은 더 이상하게 여겼다. 나도 그 기술을 배워 젓가락으로 많은 일을 한다. 소금과 양념을 찍을 때도 숟가락이나 따로 손을 내밀 필요 없이 수분 묻은 젓가락을 쿡 찍으면 끝난다.

언젠가 한국에 온 이태리 요리사가 이런 광경을 보더니 “마술 같다”고 한 적이 있다. 그는 젓가락질을 빨리 배우기 위해 손가락에 고무줄을 친친 감고 연습을 한 적이 있는 요리사다. 젓가락질에 필요한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그랬다고 한다. “젓가락질을 잘하면 서양에서는 좀 다른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게 이유였다. 더 세련되고 특별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아시아식당에 가면 나무젓가락 봉지 뒷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젓가락질을 하는 순서다. 연필을 잡듯이 한 짝을 잡고 다른 한 짝을 올려서 교차하듯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이번에 유럽에 가서 그들이 얼마나 젓가락을 잘 쓰는지 또 한번 확인했다. 스시집이 넘쳐나고 서양인이 요리하는 일본식 라멘집도 성황이었다. 잘 차려 입은 선남선녀들이 젓가락질을 하면서 이런 음식을 즐기는 건 더 이상 새로운 풍경도 아니다.

수저 이미지 (출처 :경향DB)


우리가 젓가락질을 잘해서 무슨 줄기세포인가를 잘했다는 게 ‘구라’임이 밝혀지고, 손가락을 유연하게 사용한 ‘그립질’을 해서 경을 친 인사도 있지만 어쨌든 젓가락질을 잘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건 감사한 일이다. 젓가락은 태생적으로 아시아의 식생활에 적합한 도구로 발달했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 연료는 적고 인구는 많으니 재료를 잘게 썰어 요리해야 했고, 그것을 집는 데 젓가락만한 도구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식량 부족으로 재료를 작게 썰어 짜게 양념해서 나눠 먹었다. 젓가락은 그런 식탁에 필수적인 도구였다. 그런데 한국은 같은 젓가락 문화권인 중국, 일본과 달리 숟가락을 즐겨 쓴다. 한국의 숟가락은 매우 독특하다. 서양도 수프용 숟가락을 쓰지만 설계 자체가 다르다. 수프용 숟가락은 입속에 다 들어가지 않고 흘려 넣게 설계되어 있다. 반면 한국 숟가락은 밥과 국물 겸용이어야 하므로 입속에 다 들어가는 모양으로 발전했다. 같은 듯 다른 것이다.

우리 숟가락은 둥글고 온화한 미덕과 인정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 숟가락의 미덕을 서양인들이 알게 될 날이 올까. 한 그릇의 잘 지은 밥을 숟가락으로 떠넣을 때의 쾌감을 그들이 깨닫게 된다면 참으로 특별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요리는 도구를 수반한다. 우리 음식이 서양에 퍼져 나가면 자연스레 숟가락 문화도 번져갈 것이다. 젓가락에만 쏠려 있는 세계인의 관심이 우리 숟가락에도 몰려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다. 일본도 중국도 쓰지 않는 밥과 국 겸용 숟가락에 주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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