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참을 수 없는’ 건축의 ‘가벼움’



땅거미 진 어느 골목에서 보았다. 짐작컨대 저 건물의 내부는 층을 쌓는 바닥도, 칸의 가름도 없는 하나의 높고 넓은 공간이리라. 살펴보니 그곳은 비바람만 피하려는 철재가공공장이더라. 이름 짜한 갤러리의 비싼 조명보다 더 근사하게 비치는 외벽은 실은 대낮에 작업공간에 햇빛을 들이려고 반투명한 재료를 쓴 것이니 밤 풍경은 그저 덤이더라. 필요한 넓이에 기둥을 박고 경사지붕을 덮으니 형태는 단순하고 재료는 소박하여 무엇 하나 꾸민 게 없이 담백하더라.


건축이란 대지를 존중함이 마땅하지만 그런 경우는 가뭄에 콩 나고, 공공건축 또한 세상을 향해 문 닫기 일쑤다. 공동주택에서조차 공동성의 실천을 보기 어려우며, 문화와 예술을 앞세우고도 쓰임새 없이 놀고 있는 반문화적 건물은 얼마나 많은가. 주변의 여러 맥락, 사회·환경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이 저급한 시장논리만 있는 상업건물들이 행진하고, 또 그 꼴을 좇아가는 의료·교육·종교시설이 줄을 잇는다.


시답잖은 개념, 가치 없는 실험, 의미 없는 디자인을 앞세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건축의 양태가 갈수록 경박해진다. ‘자본의 시녀’인 건축이여, 이제 좀 겉모습이라도 덤덤해지자. 자본이 있을수록!



이일훈 | 건축가



'=====지난 칼럼===== > 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소는 기억이다  (0) 2013.07.15
풍경 속의 태도  (0) 2013.07.01
마음속의 삼원색  (0) 2013.06.03
다시 5·18  (0) 2013.05.20
바다 위를 걷고 싶다  (0) 201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