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장소는 기억이다

 

‘신선이 다스리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단양엘 갔더니 산천물색 좋은 사이 ‘피화기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보여 지인에게 물으니, ‘난리가 나도 화를 입지 않을 터’라고 한다. 6·25 때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살았더란다. 얼마를 더 가다 ‘통한의 곡계굴 위령비’를 보았다.


“1951년 1월20일(음 12월12일) 오전 10시경 미군이 곡계굴과 노티마을 일대를 폭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마을 가옥 50여 호가 전소되고, 곡계굴 내부에 피란차 은신 중인 주민과 피란민 약 360여 명이 사망 또는 부상당했다. 이들 대부분은 곡계굴 안에서 불타거나 질식해 사망하였고, 일부 굴 밖으로 뛰어나온 사람들은 기총 사격에 의해 사망 또는 부상했다. 이 가운데 생존한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하였다.” 


가까운 거리에 어느 곳은 피화기(避禍基)인데 곡계굴은 화기(禍基)였던가. 억울한 죽음을 위무하듯 흐르는 구름이 비석을 쓰다듬고 가더라. 삶이 죽음을 품고 있듯이 삶터 또한 서러움을 안고 있다. 낯선 곳에 가시거든 유원지와 맛집의 웃음만 챙기지 말고 산하의 상처와 아픔도 살펴보고 잊지 마라. 장소란 바로 기억이 아닌가. 사람은 기억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