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들에서 취사를 금하지 않던 시절은 불판의 시대였다. 여기저기 돗자리를 깔고 생전에 처음 본 듯, 못 먹고 죽은 귀신 씐 듯이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 시절 어느 날, 어떤 절집 계곡에 행락객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대웅전 마당까지 넘어오더라. 소란은 그나마 참을 만한데 담장을 넘어오는 고기 탄내는 부처님께 참으로 민망하더라. 아무리 제 맘대로 먹고 놀아도 육식을 금하는 절집 옆에서 고기를 굽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 하더라. 아무리 믿음이 다르고 없다 해도 이웃종교에 대한 존중이 없더라. 배려도, 염치도 다 없더라.
무엇을 먹고 안 먹고는 그저 고유한 먹거리문화 중의 하나일 뿐 옳고 그름을 가릴 일이 아니건만 88서울올림픽 때는 외국인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개장국을 금했다. 그러자 보양탕·영양탕으로 개명하여 일년 내내 변함없는 사철탕으로 살아있으니 아 보신탕은 영원하리라.
큰길가에 붙어있는 간판, 누구 불빛이 센지 다투고 있더라. 개를 가족으로 여기는 이들은 ‘애견샵’으로, 가축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보신탕’집으로 오라한다. 한 집에선 꼬리 치는 개를 쓰다듬고, 옆집에선 삶은 고기를 맛나게 먹는다. 둘 다 마땅한 일이건만 보는 마음은 안쓰럽다.
이웃한 두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 개를 사랑(?)하는 방식이 서로 많이 다르다.
이일훈 |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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