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만 되면 해수욕장마다 피서객이 많은 것을 자랑한다. 수십만명은 보통, 100만명이 모였다고 떠들기도 한다. 10만명이 모였다는 어느 해수욕장을 항공사진으로 분석했더니 반에 반도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마구잡이 셈이라도 과장이 너무 심해 믿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아니 믿는 사람이 바보다. 지나치게 인파가 많으면 행락의 질이 엉망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숫자만 불린다.
반대의 경우를 촛불집회에서 본다. 한편에서 3만명이라면 다른 쪽에선 7500명, 5만명이라면 1만6000명.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광장의 밤이 너무 어두워 잘못 세는가 보다). 그렇게 사람 수를 늘리고 줄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 아닌 숫자에만 관심을 두는 ‘질보다 양’의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러면 ‘양보다 질’의 사고는 괜찮은 것일까. 아니다. 사람을 두고 질과 양으로 재려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그 둘이 같음을 알지 못하니 같은 말을 달리 외친다. 한쪽에선 촛불을 ‘민심’이라 말하는데 다른 쪽에선 촛불을 끄고 ‘민생’으로 돌아오란다. 민심과 민생은 백성 민(民)을 앞세운 같은 말. 민심이 민생이고, 민생이 민심인 것을 어찌 그리 다르게 다투나. 숫자만 세니 사람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경향DB)
이일훈 |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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