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한국의 ‘민낯’을 만난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에 머물고 있다. 올해 17회를 맞은 전주국제영화제이다. 영화제의 낮과 밤은 일상을 보내는 서울의 낮과 밤과는 많이 다르다. 어떤 점에서, 영화제를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일상과는 다른 체험을 의미하기도 한다. 평소와 같은 평일 낮이라면 강의실에 있거나 언론시사회 현장에 있겠지만, 영화제에서는 다르다. 낮에는 주로 한국에서 개봉하기 힘들 것으로 예측되는 영화들을 본다. 밤이면 여기저기서 사람들과 만난다. 일상의 시간표가 느슨해지고, 거의 고행에 가까운 영화제 시간표가 새롭게 재구성된다.

올해엔 한국 영화만 15편을 보게 되었다. 모두 보고 난 첫인상은 바로 이 15편이 한국의 민낯이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극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다큐멘터리 즉 사실적인 기록 영화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모두 8편이다. 15편 중 8편이니 절반을 넘는다. 이것 하나만도 상징적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적 허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카메라를 직접 들이대서 보여줘야 할 현실들이 더 많다. 상상력을 관통해 하나의 다른 세계를 만드는 것보다 지금, 현재, 여기에 존재하는 그 현실 중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더 많은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들여다보자. 극영화의 대부분은 20대 혹은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 삶은 고달프다. 거의 모든 극영화에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학자금대출”이다. 영화의 분위기가 밝다면 어차피 갚아야 할 빚이니 밝게 갚아 나가는 주인공이 등장하고, 만약 영화가 어둡다면 그 대출이 덫이 되어 더 나쁜 현실과 손을 잡는 주인공을 보기 때문이다. 취직은 힘들고, 꿈을 이루기는 더 어렵다.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철없는 녀석이라 비웃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절대 꿈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꿈은 상상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겨우’ 전달될 뿐이다. 젊은이들은 강퍅한 현실 앞에서 하나둘씩 부서져 나가고, 그래도 세상의 온기와 접촉한다면 그나마도 환상 속이다.

반면, 다큐멘터리의 문법은 좀 다르다. 올해 영화제에서 화제를 끌고 있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하나는 해고된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백>이다. 두 작품엔 흥미로운 교차점이 있는데, <자백>의 감독인 최승호가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감독이 배우로 출연했다기보다, <자백>을 만든 최승호 역시 해직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의 한 장면.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은 왜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추적해 가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왜 방송매체의 기자들이 진실보다 가십에 이끌려 다니게 되었는지를 기자들의 해직 과정과 겹쳐둔다. 한편, <자백>은 최승호 감독이 몸담았던 <PD수첩>의 극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간첩 혐의로 기소된 공무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세계에 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최승호는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를 사실의 힘이라는 정공법으로 무너뜨려 간다.

새삼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 두 작품은 우리 사회의 언론이 건강했다면 굳이 극장까지 오지 않았어도 될 작품이다. 언론에서 해야 할 일이 영화라는 좀 더 포괄적인 대체 방안을 통해 재현되고 있다. 물론 이마저도 영화제라는 양식과 문법이 없었더라면 일반 대중과 만날 길이 묘연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비단 한국에서만 있는 일은 아닌 듯싶다. 가령,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탄 핀핀 감독의 <싱가포르에게 사랑을 담아(To Singapore, With Love)>는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상영되었지만, 막상 싱가포르 현지에서는 상영할 수 없다고 한다. 터키의 상황도 유사하다고 한다. 이스탄불 영화제에서 선보인 게릴라군에 대한 다큐멘터리 때문에 터키에서 개최되는 많은 영화제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영화제에서 우리가 만나는 현실과 일상 속에서 만나는 현실이 이렇듯 무척 다르다.

그렇다면 지금 개봉관의 개봉 영화 리스트를 한번 살펴보자. 초월적인 영웅이 세계를 위험에서 구해주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이 상영관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냉동 상태에서 깨어난 영웅, 스스로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기술을 가진 갑부들은 영화 속에서 지금도 세상을 구하느라 여념이 없다. 상영관 속의 그 어떤 세계에도 학자금대출이나 진실왜곡, 문서위조와 같은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우리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일들 때문에 분명 괴로워하는 자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상상도 현실에서 태어난다. 환상도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존재한다. 지금, 영화적 상상력의 최전선인 영화제에서는 상상을 붙드는 현실, 환상도 넘어서기 힘든 현실들이 고스란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화장도, 성형도 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맨얼굴이 이렇게 영화제에 있다.

우리가 가상의 나라에 파견된 군인의 활약에 흥분하고 있을 때 그리고 전 세계를 구해주는 영웅들의 활약을 구매하고 있을 때에도 그렇게 대한민국의 맨얼굴은 진행 중이다. 진실은 불편하고, 맨얼굴은 흠집투성이다. 하지만, 만들거나 꾸미지 않은 진실, 불편한 맨얼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강유정 |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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