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광란적 에너지 시대

장 보느라 새벽에 출근하는 일이 잦다. 새로 도입된 전동차가 얻어걸릴 때면 몸서리를 칠 때가 있다. 두 가지 이유다. 실내기온이 너무 낮기 때문이고,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서다. 살갗에 소름이 돋도록 춥기 때문이다. 하노라고 하는 일일 수 있다. 시민의 발이니 지하철만이라도 시원하게 하는 게 뭐 나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반소매에 드러난 피부를 문지르면서 휴대폰을 보니 뉴스가 뜬다. 일본인 학자의 경고다. “도쿄사태는 새발의 피, 고리원전이 더 위험”….

요즘 뉴스를 곰곰이 뜯어본다. 에너지의 관점으로 다양하게 읽히는 뉴스가 대부분이다. 한·중 정상회담, 일본의 ‘보통 국가’를 향한 헌법개정, 동아시아에서 벌이는 열강의 군비확장도 가까이나 멀리나 에너지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두말하지 않아도 에너지는 권력이고 힘이고 돈이다. 장차 그 속성이 더 강해질 것이다. 지구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뉴스가 아니고 저 남쪽의 밀양에서 일어나는 ‘할매들’의 수난도 따지고보면 에너지에서 비롯한 문제다.

밀양 사태는 아시다시피 한 지역의 생존권 문제에서 시작되어 에너지에 대한 시각의 충돌로 확장되었다. 블랙아웃으로 위협하면서 권력은 기어이 ‘할매들’을 몰아냈다. 그 처사에 항거하고 분노하면서도 우리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든 다량의 얼음을 대수롭지 않게 ‘셀프’로 분리 배출하고 점심시간을 마무리한다. 마치 에너지 괴물인 미국처럼, 거대한 크기의 종이컵에 얼음을 꽉꽉 채워 콜라를 마시고, 추워서 피부를 비벼대면서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본다. 아 낭비와 무관심이 유발할, 미구에 틀림없이 닥칠 에너지 공황은 안중에도 없다.


요리사는 불을 때서 요리한다. 모든 에너지는 근원이 같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몸을 써서 요리를 하는 것도 ‘불을 때는’ 행위와 같다. 우리 몸도 일종의 내연기관이니 먹어서 힘을 얻고, 그 칼로리는 전기나 기름에서 얻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실제로 우리가 먹는 곡물과 고기를 때서 난방을 하거나 에어컨을 돌릴 수도 있다. 곡물과 고기가 썩은 것이 기름이고 석탄이라는 놀라운 순환을 생각해보라. 노장 요리사들은 그들의 일생에서 가장 급격한 에너지의 변화를 겪은 분들이다. 나무-석탄-구공탄-프로판가스-도시가스-전기로 이어지는 연료의 변천을 체험했다.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에 요리용 화력이 변해온 경우도 없다. 내가 아는 ‘사부’급 요리사는 동란 이후에는 나무와 까만 분탄을 물에 개어 화덕에 넣고 요리를 했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에너지로 먹고 산다. 하루도 그 ‘열량’의 도가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최후의 광란적 에너지 시대, 그 종말은 어떻게 될까. 두려워할 줄 아는 건 지혜의 진면목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 스위치 하나로 엄청난 열량의 화력이 활활 타오른다. 불을 사랑하는 요리사이지만, 밀려드는 두려움은 뭔가.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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