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공짜 안주는 없다

스페인 술집을 흔히 타파스 바라고 부른다. 그냥 술과 커피를 파는 ‘바(bar)’인데 타파스를 판다고 해서 구별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에서 타파스 바는 자못 선풍적이다. 간단하게 만든 여러 가지 요리를 곁들여 술마시는 문화다. 제철의 지역 재료를 써서 푸근한 손맛으로 요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에서도 이 요리를 배우러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있다. 그렇다고 요란한 요리는 아니다. 서민들이 즐기는 그야말로 소박한 요리의 대명사다. 타파스는 스페인어에서 ‘뚜껑’을 의미한다. 원래 ‘안주’라는 개념이 희박한 유럽에서 술 한 잔을 바에서 시키면 수수한 씹을 거리 정도를 곁들여주는 문화에서 타파스가 탄생했다. 술잔에 뚜껑처럼 얹어 놓고 먹는 빵이 바로 타파스 문화의 시초라는 것이다.

타파스란 원래는 공짜 안주를 의미했다. 술 한 잔 마시는데 야박하지 않게 곁들임 음식 정도는 내주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스페인에서 타파스는 어쨌든 돈 받는 요리를 의미하게 됐다. 문화가 바뀌기도 했겠지만, 과거 같은 인정머리가 없어진 탓도 있으리라. 이는 다분히 토지자본과 관계가 있다. 자기 가게에서 잔술이라고 팔면, 공짜 안주를 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가게를 임대해서 장사하려면 월세를 내야 한다. 공짜 안주 찾는 손님은 저절로 멀리하게 된다. 빵 한 조각도 돈을 청구하거나, 잔술 값을 올려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것 중에 실비집이라는 업태(業態)가 있었다. 간단한 안주를 싼값에 낸다는 뜻이다. 이런 가게에서 막걸리를 잔으로 마시거나 막소주를 반병쯤 마시면 으레 공짜 안주를 냈다. 김치보시기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식구들이 먹던 멸치와 고추장 정도는 내는 것이 인심이었다. 도시에서 사라지던 것들이 아직 지방에서는 살아 있다.

두어 해 전에 구례에 들렀다. 시내 한복판에 어울리지 않는 오래된 노포가 하나 있었다. 공짜 안주가 좋았다. 두부 정도는 그냥 내주었다. 따로 인심 쓰는 것도 아니고, 으레 그런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술을 마시는 동안 가게를 관찰했다. 동네 주민들이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잠깐씩 들러 목을 축였다. 두부며 김치 따위 안주는 당연히 공짜였다. 술값으로 달랑 1000원짜리 한 장 치르고 문을 나서는 모습이 나 같은 도시인에게는 더 기이하게 보일 정도였다. 막걸리만 한 주전자 시키면 안주는 한 상 차려 나오는 전주의 풍속도, 비운 술병에 따라 안주가 딸려 나오는 통영의 주점 문화도 원류를 좇아보면 ‘안주는 따로 셈이 없다’는 오랜 민중의 풍속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야박한 토지자본과 치솟는 임대료 등쌀에 공짜 안주나 저렴한 곁들이 풍속은 사라져간다. 밥반찬 두어 가지에 소주 한두 병 비워도 아무 말이 없던 밥집 인심도 사라졌다. 안주를 시키지 않으면 술도 없다. 가겟세를 벌충하려면 식당으로는 어림도 없고 술집을 차려 매상을 올려야 한다. 도대체 그렇게 오른 임대료는 다 누구 호주머니에 가는 것일까. 왜 우리는 한 잔 술에 아주머니 인심조차 푸근하게 누려볼 기회를 박탈당하고 마는 것일까.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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