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꽃 도둑 심보



이일훈 | 건축가






멀리서 보니 위장무늬 군복을 입은 버즘나무가 크고 하얀 명찰을 달고 있더라. 가까이 가보니 A4 용지에 정성들여 또박또박 쓴 글이 가득, 비가 와도 젖지 않게 비닐로 투명 씌움까지 해서 누름 못으로 박았더라. 못이 박히는 그 순간 버즘나무는 얼마나 놀라고 따끔했을까. 아마 누름 못자리가 급소였다면 나무는 놀라 소리 지르고 눈물을 찔끔 흘렸을 것이다.


“어린이집 화분을 가져가신 분은 다시 제자리에 놓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분은 저희 원아들이 자연체험학습활동을 위해 자유롭게 관찰하고 있는 교구입니다. 꽃을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곳에 있으면 합니다.” 아, 그렇구나. 누군가 화분을 훔쳐갔구나. 화분을 가져간 사람이 버즘나무에 붙어있는 글을 읽는다면 속이 뜨끔할 거다. 사라진 화분 때문에 어린이집에서는 긴 글을 써 붙이고, 동네사람들은 즐겁지 않은 글을 읽는 것이다.  


화분을 가져간 그 사람, 꽃은 탐하지만 심보는 꽃이 아닌 모양이다. 꽃을 보고 싶다면 씨앗부터 뿌릴 일이거늘 몇날 며칠이 지났어도 사라진 화분은 돌아오지 않고 있더라. 


제일 애꿎은 것은 영문도 모르고 침 맞은 버즘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