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사물과 사람 사이]사다리의 이중성

이일훈 | 건축가




사다리는 높이와 깊이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욕망의 기구로 공간의 면적과 비용을 절약하려는 관점의 산물이기도 하다. 불통의 공간에 이르는 과정에 꼭 필요한 사다리는 근본적으로 계단보다 위험하다. 필요와 위험의 이중성을 지닌 사다리는 희망과 절망을 같이 품고 있다. 오르려는 곳에 잘 놓인 사다리는 희망이지만 먼저 오른 사람이 뒷사람은 오르지 못하도록 걷어찬 사다리는 절망 그 자체다. 꿈에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길몽, 반대로 내려오거나 쩔쩔매면 흉몽이다. 하지만 해몽을 아무리 잘한다 해도 썩은 사다리라면 의미가 없다. 사다리의 얼개와 구조를 보려면 파몽(破夢) 아니면 길이 없고, 측면만 보면 실상을 알 수 없다. 앞뒤 좌우 위아래를 다 훑고 속을 비추어 그림자까지 봐야 전체가 보인다.


대선판에 설치는 말들이 흡사 사다리 같다. 필시 어떤 공약은 공약(空約)이 될 것인데 그걸 알고도 말하는 후보와 믿는 사람이 있으니 가히 세상을 속이는 공약(恐藥)일 것이리라. 후보들이 보여주는 사다리가 천사의 진솔한 권유인지, 악마의 가증스러운 유혹인지 구별하는 제일 쉬운 감별법은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말의 그림자에 더하여 사람의 그림자, 다시 현실의 그림자에 더하여 지난 과거의 그림자. 모든 형상은 그림자를 지울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