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사물과 사람 사이]불리는 것에 대하여

이일훈 | 건축가


 

연필에 지우개를 붙여 하나로 만든 아이디어는 두 가지를 따로 챙기는 성가심을 해결한 그야말로 대박상품이었다. 새로운 제품이란 이전에 없던 것보다 전에 있던 것들을 변용·변화·개선시킨 것들이 더 많다. 비슷한 쓰임새를 합칠 수도 있고, 전혀 상관없는 기능을 더할 수도 있다. 잡다한 기능 중에서 소용없는 것을 과감히 버려 개선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욕심으로 합쳤으나 큰 소용이 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파란색 합성수지의자 위의 붉은 원통은 통행을 차단하는 목적으로 설치할 때는 ‘차단봉’, 안내를 목적으로 할 때는 ‘유도봉’으로 불린다. 그것이 의자와 한 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의자차단봉’ ‘의자유도봉’ ‘유도봉의자’ ‘차단봉의자’ ‘봉의자’ 또는 ‘의자봉’. 어떻게 부르든 무엇이 우선인가는 여전히 숙제다. 요즘의 대선 판 풍경도 이와 비슷하다. ‘문철수’와 ‘안재인’이 되지 못한 문재인과 안철수는 장고 끝에 악수하고, 누군가는 두 이름을 합쳐 ‘이명박근혜’로 불린다. 암울했던 시대의 다카키 마사오와 박정희도 등장한다. 사물도 사람도 둘이 하나가 될 때는 이름 짓기의 어려움을, 하나가 둘이 될 때는 불리는 것의 무서움을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