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까칠한’ 아이를 태운 초보

이일훈 | 건축가





초보운전자는 승용차 뒤 유리창에 뭘 써 붙인다. 초보인 줄 알면 더 겁주며 무시한다고 써 붙이지 말라는 이도 있지만 대개는 초보임을 알려 이해를 구한다. ‘초보운전’이 고전답게 가장 많고, ‘답답하쥬 저는 환장하겄슈’ 같은 솔직한 고백도 있지만, ‘세 시간째 직진 중’은 엄살이 지나쳐 믿기지 않는다. ‘첫 나들이’는 곱디고운 우리말이 새삼스럽고, 노란 병아리 한 마리를 크게 그려 붙인 그림은 시각적 호소력이 대단하더라. 초보가 아니어도 장애인이나 노약자임을 알리는 표시도 있다. 그럴 경우 양보하고 배려함이 마땅하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는 아이가 탔으니 양보해 달라는 부탁이다. ‘아이 태운 초보’는 보는 사람이 더 긴장되더라. 아, 아이를 태웠군요,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 천천히 조심해서 먼저 가세요, 빵빵거리지 않을게요. 


그런데 ‘까칠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는 뭘까. 까칠하다는 ‘야위거나 메말라 살갗이나 털이 윤기가 없고 조금 거칠다’는 뜻이지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남을 이해하지 않으며 성격이 팍팍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양해를 구하는 자세로는 적절치 않은 말이다. 나는 까칠하니 네가 피하라는 언짢음이 느껴진다. 하긴 깍두기머리에 문신 새긴 깡패 주먹을 그린 차도 보았는데 참 어이없더라. 아무 표식 없어도 임의로운 세상은 언제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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