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이일훈의 사물과 사람 사이

꽃보다 뿌리

이일훈|건축가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꽃이라 한다. 어떤 일의 핵심이나 번영과 절정의 상태도 꽃이라 한다. 한마디로 존재의 빛남이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 한다. 그럼 선거의 꽃은? 물론 공명정대한 관리와 자유로운 의사표현이지만 정치인들은 오로지 당선만을 꽃으로 여긴다. 인식이 그 수준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흙탕물을 튀기고 잡음을 일으키면서도 꽃이 되려 한다. 피기만 하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식물의 생리에선 꽃만 떼어놓고 볼 수 없다. 뿌리·가지·줄기·잎의 가운뎃점(·)은 서로를 떼는 것이 아니다. 뿌리-가지-줄기-잎은 줄표(-)처럼 이어진 유기작용의 결과다. 그렇구나, 꽃은 뿌리와 이어진 한몸이니 제대로 살피려면 현혹의 꽃잎 너머 뿌리를 봐야 한다. 아니, 뿌리야말로 보이지 않는 꽃이로다.


꽃이 되길 바라는 정객들이여, 늘 화무십일홍을 송독하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꽃, 김춘수)를 곱씹으며,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그 꽃, 고은)을 마음에 새겨라. 어둠 속에서 흐린 눈 홀리는 꼼수로 피지 말고 땡볕 아래 피는 소금꽃의 가치를 잊지 마라. 뿌리가 꽃임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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