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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13) 전유성 - 장섭·제비에게 세 번째 띄운다

전유성 | 개그맨

 

 


“너희가 결혼하면 매년 한번씩은 꼭 편지를 써야지” 하고 마음 먹었는데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게 쉽지가 않구나.

이번에도 계속 미루어 오다가 타의로 편지를 쓰게 됐다만, 이런 계기라도 생기니 더 이상 미루지 않아서 좋구나.

 

여행 중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면, 경치 좋고 공기 좋은 곳에는 토박이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요즘엔 토박이가 아닌 사람도 많더라. 거제도의 조그만 섬을 사들여서 몇십년 동안 그 섬을 가꾸어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 사람, 제주도의 매력에 빠져서 일찌감치 작정하고 육지를 떠나온 사람, 지리산으로 와서 자신이 찍은 작품으로 사진전시장을 만든 사람 등 저마다의 사연도 다양하더라. 그 중에서도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터전을 옮겼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는,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까지 둔 나로서는 상당히 공감이 가더구나. 아빠의 기준에서 살 만한 곳으로 가서 살라고 권유한 나의 부탁대로 지금 장섭이와 제비 너희 부부가 지리산에 떡하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새삼 놀랍고 고맙다.

 

시골에 가서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제비는 개구리를 무서워하는 데다 둘째아이도 낳아야 하는데, 도시생활을 하던 이의 습관으로 보면 불편한 점이 많을 거다. 그래서 너희 부부가 나의 꼬임(?)에 빠진 것을 후회하지는 않을지 걱정을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젠가 장섭이가 “아버님 고맙습니다. 제가 회사만 다녔다면 이런 경치도 못보고 살 뻔했어요” 했던 말이 머릿속에 와 박힌다.

 


(경향신문DB)


 

너희가 살고 있는 인월마을은 마음 착한 흥부가 살았던 흥부마을이잖아. 흥부마을에 제비부부가 가서 산다는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라고 본단다. 흥부마을이 제비다리를 고쳐준 덕분에 잘 살게 되었다는 전설도 있으니 알아서 잘 살아라. 잘 살라는 게 뭔 말이냐고? 참, 밑도 끝도 없는 말이긴 하지만 나 잘 사는 방법 다르고 너 잘 사는 법 다르니 알아서 잘 살라는 말이다. 편의점도 없고, 하수도가 터져서 아이의 백일 떡도 못 만들어 준다고 했다는 떡집 등 시골생활의 각종 불만들을 너의 트위터에서 읽을 때면, “당장 도시로 이사 가라”고 외치고 싶지만 또 그게 마음대로 될 일이냐?

 

내가 한때 지리산 암자에 살면서 사귀었던 지리산 포수 동기 삼종이 형제, “우리집의 자랑은 마누라가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겁니다”라고 말하던 봉대 아저씨, 너희의 배후세력(?)이 되어 주고 있는 듬직한 은진미륵 아저씨, 그리고 한번 먹어보면 삼대가 못 잊는다는 산골식당의 삼겹살과 천왕봉이 보이는 너희 가게, 칠선계곡 뱀사골, 안개 낀 노고단 실상사 등 그래도 어디에 비할 수 없이 좋은 게 많은 곳이잖니. 캐면 캘수록 소뼈 우려 먹듯 나오는 무궁무진한 지리산 이야기도 매혹적이고.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다 못 가본다는 지리산 골짜기들이 인사만 잘하면 너희네 좋은 이웃이 된단다.

 

오늘이 나의 손자 레오의 백일잔치 날이구나. 백일에 잔치를 못하고 백삼일에 백일잔치를 하게 된 이유는 레오 네가 자라 한글을 깨우칠 때 그때 알려주마.

 

제비는 신나게 날고 너희의 첫아들 레오는 새끼사자가 되어 뛰어다니고 장섭이는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며 ‘세상의 놀부들’로부터 가족을 지켜주는 든든한 지리산 장승이 되기를 바란다. 어느 세상 어느 곳에 살든지, 우리네한테 유리하게 해석하면 얼마든지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겠니? 제비네 식구는 흥부마을에서, 아빠는 풍각면에서 풍각쟁이를 꿈꾸는 개그맨 지망생들과 살고 있는데…. “지리산에 들어오신지 몇 년이나 됐어요?” “십오년됐습니다. 하하하” 하며 함박웃음을 터뜨리던 사람들이 부러웠다. 너희들도 십오년쯤 후에 “지리산 들어온 지 십오년됐습니다. 하하하” 하고 웃는 부부가 되기를 바라면서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