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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마지막 편지](14) 곽금주 - 그때 미안했고 고마웠어요

곽금주 |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지금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싶은 일들이 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해서, 마음이 넉넉지 못해서, 아니 나이 들어가면서 자신의 생각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라서, 그만큼 성숙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내 나이 만 스물여덟,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이다. 그때 나는 과정을 가능한 한 단축시키기 위해서 대학원 첫 학기에 5과목을 이수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만큼 힘든 일이었다. 우선 영어가 들리지 않아서 늘 강의 시간이 끝나면 일일이 교수를 찾아가서 내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를 다시 확인해야 했고, 학사 행정을 알기 위해 늘 지도교수님의 방에 가서 물어보곤 했다. 당시 지도교수님 곁에는 교환교수로 와 있는 친한 브라질 교수가 있었는데, 나와도 같이 듣는 강의가 있었다. 그때 그는 나보다 나이가 십년쯤 위였는데 늘 질문이 많았던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다. 멀리서도 나를 보면 함박웃음을 띠면서 달려와서 얘기를 건네곤 했고 무언가 늘 도와주고 싶어 했다. 미국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내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영문 작성이 안돼 힘들어 하고 있으면 내가 쓴 글을 읽고 꼼꼼히 수정해 주기도 했다. 게다가 적극적이고 열심인 그리고 늘 긍정적이고 해맑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말을 늘 하곤 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곽금주 ㅣ 출처:경향DB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던 어느 날 늦은 오후, 지도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지도교수님과 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은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와 나 둘은 한 시간쯤 후 지도교수님의 보충강의가 열리게 될 강의실로 먼저 가 있기 위해 교수실을 나왔다. 그렇게 강의실로 가는 도중이었다. 그는 자기가 차를 바꾸었는데 보러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우린 주차장까지 걸었다. 그리고 같이 차도 타보고 이것저것 차의 부품도 구경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면서 갑자기 ‘아차’ 싶었다. 외간 남자와 단둘이 있다니…. 나는 갑자기 훽 차에서 내리곤 빨리 강의를 들으러 가자고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듯한 그 앞에서 나는 묵묵히 걸어갔다. 그런데 늦게 강의실로 들어오는 우리 둘을 보고 교수님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아까 그렇게 일찍 나갔는데 왜 늦었느냐고, 주차장에 다녀왔느냐고 말을 건넸다.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화가 치밀었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하니 더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주차장에 간 걸 아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 후 나는 지도교수님의 방에서 두 사람에게 따졌다. “이제까지 호의는 정말 고맙다. 그렇지만 뭐냐, 서양 남자들은 동양여자를 우습게 보는 거냐? 결혼도 했는데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는 거냐? 나를 데리고 장난하려고 한 거지?”라면서 다소 서툰 영어로 화를 내면서 다그쳤다.

 

두 사람은 당황한 것 같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할 얘기를 퍼부었다. 그런 후 씩씩거리면서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 후 그는 강의실에서도 나와 가장 먼 자리에 앉고 멀찌감치에서 나를 보게 되면 얼른 얼굴을 돌리곤 했다. 멀리서도 다른 길로 피해가는 모습도 보였다. 나를 정말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서로 이야기는커녕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나는 급하게 공부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지도교수님께 마지막 인사를 간 날, 교수님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너를 인간적으로 정말 좋아했다고. 그런데 그날 이후 정말 상처를 받았노라고. 언젠가는 너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도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나를 만만하게 보았다는 분노만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를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딱히 남녀 관계라기보다는 그저 한 인간으로 나를 좋아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로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남녀 간에는 절대 친구가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내 고지식함이 그런 기회를 앗아간 게 아닌가 싶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지킬 것을 지키면서도 남녀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이름조차 잊어버린 그에게 이 지면을 빌려 용기를 내 편지를 쓴다. “그때는 내가 정말 미숙했어요. 미안했고, 고마웠어요. 다시 만나게 되면, 어쩌면 우리 서로 썩 괜찮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