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내 인생 마지막 편지

[내 인생 마지막 편지](20) 윤대녕 - 타클라마칸 사막에 쓴다

윤대녕 ㅣ 소설가

 

 

 

1995년 2월 하순의 일이었지. 나는 그대에게로 가기 위해 모두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혼자 집을 나섰지. 마치 영원히 이 세계를 떠나는 기분이더군. 유년기 때부터 아주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막, 그대에게 가는 길은 이처럼 비감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어. 1994년 봄에 첫 소설집을 내고 나서 나는 채 일 년도 안되는 동안 두 권 분량의 소설을 써댔고, 일종의 공동(空洞) 상태가 찾아와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고(故) 박찬 시인이 전화를 걸어와 실크로드를 함께 여행하자고 하더군. 그래서 나는 대뜸 물었지. 그럼 사막도 가게 되나요? 그는 노인처럼 조용히 웃으며 타클라마칸의 검붉은 모래언덕을 질리게 보게 될 거라고 하더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두 방망이질 하듯 뛰기 시작하더군. 타클라마칸, 위구르어로 ‘돌아나올 수 없는 곳’이란 뜻이지. 그래, 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었던 거야.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서안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서울의 일은 완전히 잊고 있었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전생인 듯 다만 까마득하고 아득하게 여겨질 뿐이더군. 하지만 난주, 주천, 안서에 이를 때까지 나는 제대로 된 사막은 보지 못했어. 그동안 내가 동경한 사막은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온통 모래언덕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드넓은 바다의 정지한 물결을 보는 것만 같았다. 무한한 세계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브루노 바우만)와 같은 원초적인 공간이었거든. 나는 점점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지. 말하자면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또한 길을 놓친 심정이었지.

 

 

소설가 윤대녕 ㅣ 출처:경향DB

다음날 투르판으로 향하는 길에 마침내 황량한 모래벌판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검붉은 모래벌판에 자갈로 만들어놓은 무덤들이 버려진 듯 무너져 있고 그 사이로 낙타가 지나가고 있었어. 그렇게 사막은 점점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지. 포플러와 백양나무 가로수가 길게 이어진 길을 끝없이 가야만 했어. 사람들은 당나귀를 끌고 유령처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질 뿐, 일체의 소리가 끊어지면서 나는 바야흐로 ‘고요함의 낙원’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지. 아무 두려움과 걱정 없이 말이야. 이후 타림분지에 속한 쿠알라와 쿠차를 지나는 동안에도 사막은 줄창 계속되고 있었어. 밤이 되면 추위가 엄습했고 모래언덕엔 드문드문 폐허의 잔해만이 남아 있었지. 황량함과 광활함, 그리고 이미 고요함의 경계를 벗어난 완전한 적막 속에 갇혀 나는 어느덧 풍토병에 걸려 앓아눕고 말았어. 사막을 지나오는 동안 일종의 빙의 상태가 되어 존재 자체가 와해돼 있었던 거야. 화염처럼 무섭게 덮쳐온 열병이 몸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갈 즈음 나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지.

 

바로 눈앞에 밤의 광활한 사막이 펼쳐져 있더군. 그리고 사막 끝에 거대한 달이 걸려 있었어. 나는 달을 향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지. 몇 시간을 걸었을까? 더 이상 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나는 사막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엎드려 먼 데서 불어와 나를 관통해 또한 먼 데로 불어가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있었지. 그때 나의 서른세 해는 이미 죽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어. 돌아보니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탈각의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

 

어찌어찌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근 한 달을 탈각 상태에 빠져 지냈지. 참으로 긴 여행에서 나는 돌아왔던 거야. 오십의 나이에 이르는 지금까지 나는 많은 곳들을 여행했지만 그대, 사막만큼 내 전체를 울린 장소나 풍경은 더 이상 만나지 못했어. 그대는 내게 영원의 고향 같아서 언제든 그 황량하고 고요한 사막의 품안에 누워 거대한 달을 올려다보고 싶어. 그게 다시 내 죽음의 순간이 될지라도 상관없어. ‘돌아나올 수 없는 그곳’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고 지금도 늘 사막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야. 이렇듯 살아 있는 동안 생은 영원히 거듭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