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돼지고기, 삼겹살 말고도 맛있다

삼겹살이 너무 비싸 난리다. 어지간한 쇠고기보다 비싸다. 국산 삼겹살을 파는 거리의 흔한 고깃집들은 비명을 지른다. 세월호 참사 파장으로 손님이 줄고 재료비까지 올라서다. 우리 삼겹살 소비는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났다. 유럽의 삼겹살을 얼마나 많이 수입해대는지, 현지에서 일하는 후배 요리사가 “삼겹살 파동이 났다”고 전해올 정도다. 삼겹살을 소금에 절이고 훈제해서 양념으로 많이 쓰는데 재료비가 너무 올랐다는 것이다. 바로 베이컨이다.

삼겹살은 정말 맛있는 부위다. 기름과 고기가 교대로 차곡차곡 퇴적하듯 무늬를 그리고 있는 것만 봐도 군침이 흐른다.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너무 이 부위만 먹으니 문제다.

문득 전주의 한 술집이 생각났다. 유명한 재래시장인 남부시장에 있다. 이 시장은 ‘먹자’골목으로도 유명하다. 돼지피를 넉넉히 넣은 전통적인 피순대가 인기다. 얼큰하고 시원한 콩나물해장국집도 줄이 길다. 그 한쪽에 듣기만 해도 정겨운 와락, 이라는 상호의 술집이 돼지고기를 판다. 양념을 조금만 하고 철판에 구워내는 안주가 싸고 맛있다. 껍질이 쫀득하게 씹히길래 삼겹살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삼겹살에 여러 다른 부위를 섞었다고 한다. 앞다리, 뒷다리처럼 상대적으로 ‘천대’받는 부위를 요리했는데도 혀에 착착 감기는 맛이다. 요리 기술이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고정관념을 허물었다. 돼지고기의 다른 부위도 얼마든지 맛있을 수 있다. 더구나 지리산에서 기르는 버크셔 흑돼지라고 한다.

우리는 돼지고기를 두고 두 가지 함정에 빠져 있다. 오직 하얀색 요크셔 품종이 시장을 완전 장악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삼겹살이다. 그렇다고 요크셔는 우리 토종도 아니며, 삼겹살은 전통의 고기구이도 아니다.


내 기억으로는 1980년대 초반에 삼겹살이 서울을 중심으로 널리 구워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보통 돼지구이라면 갈비였다. 삼겹살은 어떻게 고깃집의 절대자로 등장하게 됐을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알루미늄 포일과 프로판가스의 보급 덕이라는 게 정설이다. 식당마다 가스테이블을 놓고 손님이 알아서 굽기에 삼겹살만큼 쉽고 좋은 게 없다. 포일은 뒤처리가 쉽고 고기도 깔끔하게 구워진다. 주방에서 미리 굽지 않고 즉석에서 구우니 맛도 더 좋다. 여기에다 부동산 가격 폭등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점심 저녁으로 밥과 싼 안주만 팔아서는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미친 듯한 부동산 광풍과 거품 경기가 밀어닥쳤다. 수많은 실비집과 밥집들이 저녁이면 삼겹살을 팔아 임대료를 보충했다. 고소한 기름기의 욕망과 시장의 상황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삼겹살은 그렇게 우리 외식의 절대강자가 됐다. 부자들은 보유한 부동산에서 얻은 이익으로 ‘가든’에서 소갈비와 생등심을 굽고, 주머니 가벼운 시민들은 삼겹살이라도 구웠다. 세계 1등의 삼겹살 왕국 등극의 전말이라고 해야 할까.

요리사와 고깃집들은 이제 다른 부위를 어떻게 하면 맛있게 구울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농담이지만 베이컨 좀 먹고 살자는 유럽 사람들의 원성(?)이 들리는 것 같다. 이른바 ‘비선호 부위’를 맛있게 요리하는 방법이 왜 없겠는가. 앞에 든 전주의 흑돼지 고깃집이 그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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