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싸고 푸짐한 ‘어묵의 추억’

어려서 어묵(나는 왜 오뎅이라는 말이 더 혀에 붙는지) 반찬을 좋아했다. 살림 퍽퍽하던 시절, 기름기 적은 식단에 어묵은 반가운 존재였다. 어머니 말씀이 “애들 넷 도시락을 여섯 개씩 싸려면 싸고 빠른 반찬이 제일”이던 때였다. 어묵은 그저 양파와 간장을 넣고 조리는 게 전부였다. 노란 양은 도시락에 가득 퍼 담은 밥에 어묵과 김치로 허기를 메웠다. 여전히 어묵은 우리 밥상에서 싸고 푸짐한 효자 노릇을 한다. 고급한 입맛으로 다들 변해가도 어묵만큼은 옛맛이 최고인 듯하다. ‘옛날 어묵’이라는 상표를 붙이는 제품이 많은 걸 보면 말이다.

어묵이 꼭 도시락 반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간식으로도 최고였는데, 시장에 가서 어머니가 하나씩 물려주는 ‘길쭉이’를 먹다보면 입가에 기름이 번질번질해졌다. 그때 어묵은 이름이 다들 그랬다. 사각(넙적한 것), 야사(야채를 넣은 사각), 길쭉이(소시지처럼 긴 것), 동글이….

일본에 종종 취재가서 놀란 건 어묵이 꽤 비싼 음식이라는 사실이었다. 흰살 생선살을 으깨서 만드니까 결코 싼 음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어묵을 만들어 팔았다. 조선인도 그 기술을 배워 해방 후 어묵의 역사가 이어졌다. 부산은 어묵의 한 성지다. 오죽하면 부산에서 만들지도 않은 걸 ‘부산어묵’이라고 팔고들 있겠는가. 마침 영도의 어묵공장을 방문했다. 전후 한국의 어묵 역사를 만들어갔던 곳이다. 원래 어묵은 해안도시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수송과 냉장기술이 떨어지던 때라 어항이 있는 곳에 곧 어묵공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창업주의 이력을 공장에 부설된 직판장에 써 두었다. 징용, 일본인의 적산시설 불하, 징집 같은 현대사의 질곡이 그분의 개인사에 그대로 들어 있다.


갓 찌고 튀긴 어묵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일본인의 원천기술이었겠지만, 이제 어묵은 우리 음식이라고 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부산의 어묵은 한 걸음 더 진화한다. 어묵에 경남 특유의 ‘땡초’(매운고추)를 넣어 진하고 깔끔하게 만들고, 치즈와 연근 같은 새로운 재료를 넣어 퓨전 어묵을 만들어낸다. 과거 어묵이 싸구려 취급을 받았던 건 생선살 대신 밀가루 함량을 높였기 때문인데, 요새는 다시 생선살을 더 넣는 쪽으로 맛의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묵은 한동안 ‘오뎅’이라는 일본말로 불렸다. 그런데 오뎅이란 어묵은 물론 고기와 두부, 달걀 같은 부재료를 넣고 요리한 모둠음식을 이르는 말이므로, 우리가 아는 어묵과는 다른 음식이 된다. 그러므로 낱낱의 어묵은 그저 어묵이라고 부르고, 어묵을 넣은 모둠요리는 어묵탕이나 꼬치탕이라고 부르면 될 듯하다.

부산은 어묵만으로 투어를 할 만한 곳이다. 공장을 보고 부평시장(일명 깡통시장)으로 가서 어묵골목을 구경할 수 있다. 즉석에서 튀긴 어묵을 안주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호프 어묵집’도 생겼다. 제각기 다른 아이디어와 전통으로 맛깔난 어묵을 파는 집들이 골목 가득이다. 물론 고른 어묵을 냉장 택배로 선물할 수도 있다. 해운대 광안리도 좋지만, 이번 여름휴가에는 어묵 투어를 끼워 넣는 것은 어떨까 싶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