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두부요리 두 그릇

강릉까지 길도 좋아 두어 시간이면 내달린다. 두부 한 그릇 먹자고, 가는 길이다. 알려진 대로 강릉 초당에는 두부집이 많다. 본디 두부를 파는 식당이 아니라 대개는 가내 두부공장이었다. 이 지역은 전후에 두부를 만들어 팔던 전쟁 과부들이 많았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있다. 몽양 여운형이 해방공간에 이 지역에서 야학을 운영했고,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이 학교 출신들이 전쟁 기간의 흉악한 정치상황에서 무고하게 처단되었다고 한다. 몽양의 제자이니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처벌했다는 것이다. 초당의 두부는 그래서 더욱 슬픈 음식이 아닌가 싶다. 토지 없고 남편 잃은 아낙들이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새워 만든 두부를 시내에 내다 팔면서 초당두부의 명성이 생겼다.

통학길 버스에는 두부 함지를 인 아낙들이 가득했다고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초당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이고 간 함지를 번듯한 가게도 아닌 좌판에 내놓고 팔아 생계를 이었다. 초당마을은 그런 가슴 시린 역사에도 막상 가보면 푸근하고 윤기가 흐른다. 아름다운 소나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몇몇 집에서는 두부 만드는 광경을 직접 볼 수도 있다. 터줏대감 중의 한 곳인 ‘토박이할머니순두부’ 집을 운영하는 김규태씨가 시범을 보인다. 잘 불린 노란 콩을 맷돌로 갈고 뜨거운 물을 부어 콩물을 내린 후 강릉 바다 깊은 곳에서 떠온 물을 부어 굳힌다.

보기에는 너무도 간단한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콩의 그 순정한 질감과 맛은 여리디여려서 작은 변화로 맛을 망친다. 숙련된 장인들은 온도계 하나 쓰지 않으면서도 척척 눈대중으로 두부가 잘 나오는 시점을 포착한다. 무엇보다 막 만든 순두부 한 그릇은 정말 음식의 저 깊은 근원을 느끼게 해준다. 순두부를 눌러서 오래 두면 모두부가 되는데, 꽉 차는 질감의 이 두부야말로 ‘밀도’란 무엇인가 가르쳐준다.


강릉의 두부가 순정한 맛의 시작을 알려준다면, 서울 서교동에서 맛보는 마파두부는 이국적 별미다. 외진 주택가에 ‘진진’이라는 소박한 중국요릿집이 있다. 짜장면이나 짬뽕은 팔지 않는 대신 한국화되지 않은 중국요리를 다룬다. 나이 육십을 넘은 화교 노 주방장 왕육성씨가 쓰촨식 두부를 볶아서 무엇인가를 듬뿍 얹는다. 입안을 얼얼하게 마비시키는 마파두부다. 마파두부의 매운맛은 고추보다 ‘화자오’라고 부르는 초피로 내는 것이라고 한다. 거칠게 부순 초피를 얹은 뜨겁고 부드러운 두부를 한 입 먹어 보니, 온몸에 열기가 훅 끼친다. 술안주 삼아 먹어도 좋고, 밥에 얹어서 먹으니 이 겨울에 얼어버린 몸이 스르륵 풀린다. 혹독한 추위라는 쓰촨의 사람들이 왜 이런 요리를 먹는지 알겠다.

옛 문헌에 두부는 중국에서 시작했으나 조선사람들이 제일 잘 만든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좋은 두부 먹는 법을 잃어버렸다. 이참에 두부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워볼까도 싶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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