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정성일의 영화로 세상읽기

사내답게 울게 할 ‘마이 백 페이지’

정성일 | 영화감독·평론가


 

“나는 남자가 눈물 흘리는 걸 보는 게 좋아요, 진짜예요. 제대로 울 줄 아는 남자가 사내답다고나 할까.” (나는 ‘조금’ 영화 속의 대사를 내 기분에 맞추어 바꾸어 보았다) 지금 막 밥 라펠슨의 <파이브 이지 피시즈>를 보고 나온 다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잭 니컬슨이 우는 모습을 보고 여고생 구라다 마코는 정치적인 주간지 기자 사와다에게 그렇게 말한다. 제대로 울 줄 아는 남자. 사와다는 아직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는 그와 비슷한 말을 한 번 더 듣는다. 사와다가 취재 중인 ‘사이비’ 직업혁명가 우메야마는 <미드나잇 카우보이>에서 맨 마지막 장면 더스틴 호프먼이 존 보이트에게 안겨 우는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그 장면은 너무나 강렬했어요. 무언가를 행동으로 옮길 때 나는 무섭고, 정말 무서워서, 울고 싶었어요”라고 무심코 말한다.


 


1968년 3월11일, 도쿄대는 의과대학의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12명과 연수생 5명을 퇴학시켰다. 이 처분의 철회를 요구하는 의대생들이 6월15일 도쿄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다. 이틀 후 학교는 기동대를 투입하여 전원을 끌어냈다. 갑자기 이것이 화약고가 됐다. 안보투쟁 중이던 일본 전국학생연맹은 7월2일 다시 야스다 강당을 점거했고, 전공투(全學共鬪會議)의 ‘학원투쟁’이 시작됐다. 총장이 사임했고, 의대 학장이 처분 철회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전공투는 점점 더 강도 높은 요구를 했다. 마침내 이듬해 1월18일 8500명의 기동대가 투입됐고 72시간 동안 헬리콥터와 최루가스를 동원한 진압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원 체포됐다. 이 투쟁을 ‘도쿄전쟁’이라고 부른다. 그때 야스다 강당의 벽에 남겨진 수많은 낙서 중에는 “지는 줄 알면서도 싸워야 하는 싸움이 있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마이 백 페이지>는 그 ‘이후’부터 시작한다. 폐허와도 같은 야스다 강당. 도쿄대를 졸업하고 정치시사지 기자가 된 사와다는 우연히 선배를 통해서 (전공투에서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이행 중인) 연합적군의 한 계파(라고 믿은) 리더 우메야마를 비밀리에 만난다. 그는 돈을 받고 정보를 팔면서 무장봉기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쟁이는 점점 더 자기 말에 심취해서 결국 자위대에 잠입해서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른다. 사와다는 취재원 보호라는 명분으로 경찰서에서 진술을 거절하고 신문사를 떠난다. 시간이 흘러 사와다는 영화잡지에 기고하며 조용히 살고 있다. 어느 날 우연히 선술집에서 그 옛날 잠입취재차 (거짓으로) 함께 지냈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난다. (그가 여전히 누군지 모르는) 친구는 사와다에게 물어본다. “기자를 하고 싶어 하더니 잘되었어?” 사와다는 잘되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갑자기 사와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기 시작한다.


사와다의 눈물은 슬픈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이다. 이것은 후회가 아니라 수치이다. 무엇에 대해서 부끄러워하는가? 자기의 삶에 대해서 부끄러워한다. 그렇다면 사와다의 선택은 잘못된 것인가? 대답은 정반대이다. 그는 자신만을 위한 올바른 선택을 한 것이다. 




▲ “전쟁 방관자의 만회 위한 몸부림

죄책감의 환상을 투영한 실재는 환멸일 뿐

패배를 긍정하는 눈물, 한 시대와 작별인사”


사와다는 역사 앞에서 자기의 자리를 벌기 위해서 자기의 필요를 만족시킨다. 다만 그가 잘못한 것은 그 선택을 너무 늦게 잘못된 삶의 구조 안에서 연기한 것뿐이었다. 그때 희망의 역사는 서 있을 자리가 없었다. 이야기는 다소 장황하다. 사와다는 자신이 ‘도쿄전쟁’을 구경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늘 부끄럽게 생각한다. 전쟁을 구경했다는 죄책감. 어쩌면 그는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의 구경을 행동으로 만회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이 행동은 결과를 이미 보고 난 다음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아이러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사와다가 우메야마를 취재하고, 거짓말을 알면서도 그를 보호하고, 그런 다음 희생당했을 때, 그는 자신만의 ‘도쿄전쟁’을 수행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끝난 전쟁. 끝나지 않은 세계의 밤. 그는 자신이 전쟁의 패배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와다가 죄책감의 환상으로부터 행동으로 이행했을 때 마주하는 것은 실재의 환멸이다.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결심을 하는 순간 그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놓쳤다. 사와다는 역사로부터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환상으로부터 스스로 희생양이 된 것이다. 아아, 자발적인 희생양이라니!


어쩌면 올해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장면. 바로 사와다가 눈물을 흘리는 롱 테이크. 그는 구경꾼의 자리에서 쫓겨나서 거리로 내려왔을 때 비로소 자기가 자신의 환상 속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야마시타 노부히로가 종종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다소 감상적이긴 하지만 이 눈물은 분명히 명장면이다. 사와다의 눈물은 역사를 마주보지 않기 위해 찡그려서 젖은 채로 희미하게 쳐다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에 가까운 증상이다. 나는 사와다의 눈물이 ‘제대로 울면서’ 사내다운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건 아쉽게도 이미 죽은 구라다 마코가 판단할 일이다. 다만 그 우는 장면을 카메라가 멈춰 서서 하염없이 길고 길게 보여줄 때 눈물이 한 시대를 향해서 그것이 무엇이건 패배를 예스라고 긍정하면서 마무리하는 작별인사라는 것만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눈물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마이 백 페이지>는 밥 딜런의 네 번째 앨범 <또 다른 밥 딜런>(1964)의 맨 마지막에 실려 있는 노래 제목이다. 4분의 3박자의 이 노래를 포크 그룹 버즈가 4분의 4박자로 편곡해서 다시 불렀다. 영화 <마이 백 페이지>에서는 버즈의 커버 버전을 오쿠다 다미오와 ‘진심’브러더스가 패러디 하듯이 우스꽝스럽게 부른다. 


우스꽝스러운 시대. 바보 같은 희망. 가짜들의 혁명. 그래도 좋은 세상을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들이 살았던 시간. 그러므로 후렴구처럼 반복되면서 “난 지금보다 앞으로 훨씬, 훨씬 더 많이 젊어질 거야”라고 몇 번이고 부를 때는 아무래도 심금을 울린다. 모두가 이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사람은 ‘사내답게 제대로’ 엉엉 울면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