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서산냉이

봄에는 서해안에 먹을 것들이 많다. 벌써부터 군침을 삼키며 주꾸미를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그렇다면 봄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지금 주꾸미 맛이 제법이기 때문이다.

너른 들길을 끼고, 막 봄을 일구는 농부들을 바라보며 서해안으로 차를 몰았다. 힘 좋은 주꾸미가 서해안의 여러 어항에 들어온다. 전국으로 산 채 팔려나간다고 한다. 주꾸미는 먼바다에서 살다가 산란철이 되면 연안으로 붙는다. 주꾸미도 제 새끼는 의지할 데 없는 험한 바다에 던져두지 않는 것이다. 산소가 풍부하고 그늘이 있으며, 먹이가 있는 뭍 가까이 붙어서 알을 낳는다.

주꾸미 머리를 와작 씹으니 쌀알 같은 알들이 그득하다. 좁은 소견에 산란철에 이렇게 알을 먹어도 되나 싶지만, 맛은 고소하다. 배추와 바지락을 넣은 육수에 20여초쯤 두었다가 다리를 잘라 먹고, 머리는 좀 더 끓여서 먹어야 한다. 이른바 ‘샤브샤브’라는 요리법이다. 우리말로 토렴이라고도 한다.

머리는 한참 삶으면 국물이 졸아붙고 먹물이 쏟아져나와 검고 진득하게 변한다. 밥을 볶기도 하고, 국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주꾸미 알이 더 차오르면 오히려 맛이 떨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지금 주꾸미가 더 맛있다고도 한다. 서해안의 여러 들길에 점점이 원색의 움직임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냉이 캐는 할머니들이다.


서산쪽은 냉이의 전국 최대 생산지다. 옛날처럼 논두렁, 뒷산에서 캐는 경우도 있지만 손이 귀해 대개는 재배하는 냉이다. 한겨울 혹독한 추위를 피해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는 줄 알았는데, 대개는 노지재배를 한다고 한다. 농약도 아예 안 쓰거나 약하게 쓴다. 눈 맞고 거친 바람을 이겨내며 밭에서 자란다. 트랙터로 흙을 부수어 돋우어 낸 후 할머니들이 호미로 하나씩 캔다. 아직 차가운 해풍을 얼굴에 고스란히 맞으면서 호미질을 하신다. 어디 만만한 농사가 있겠냐만, 냉이 수확은 고되다. 캐낸 냉이를 일일이 흙 털어내고 건조한 이파리를 떼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냉이의 흙을 말끔히 없애기 위해 세척 작업이 뒤따른다. 사람이 일일이 일곱 번을 씻고, 기계로 세척해야 비로소 대도시로 납품한다. 거대한 수조에 냉이를 넣고 방수복 입은 일꾼이 들어가 씻어낸다고 한다. 시장과 마트에 진열된 냉이는 이런 수고를 거쳐서 들어온 것이다.

냉이는 보통 봄채소로 알지만 실은 늦가을부터 봄까지 먹는다. 한약재로 쓸 것들은 늦봄이나 여름까지 더 키운다. 냉이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잎이 민들레처럼 퍼져서 난다. 이런 식물을 방석식물이라고도 한다. 추위를 견디는 식물 특유의 방식이다. 겨우내 혹한이 있으면 냉이 향이 더 짙다. 추위에 견디기 위해 더 많은 영양을 뿌리에 저장하려는 냉이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올해 냉이는 지금이 제철이고, 향도 괜찮은 편이다. 손이 얼도록 냉이를 씻어서 된장국을 끓였다. 서해에서 막 물이 좋아진 바지락을 넣고 된장을 풀었다. 냉이는 마지막에 넣어야 향이 죽지 않는다. 찬밥을 말아 한 그릇 비웠다. 올 한 해도 냉이처럼 억세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향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더 좋겠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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