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수타면

중국음식점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 젊은이들은 중식을 값싼 배달음식으로 알고 있을 뿐, 다채로운 요리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저녁에 배갈을 곁들여 요리를 시켜놓고 모임을 갖는 이들도 크게 줄었다. 간편한 대용음식쯤으로 안다. 중국집의 화려한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세월이다. 예전에 중국집에 들어서면 면 치는 소리가 들렸다. 탕! 탕! 나무 반죽판에 놓고 치는 밀가루 덩어리가 이내 가느다란 국수로 뽑히는 광경을 주방 창문 틈으로 볼 수 있었다. 나무젓가락을 비벼서 부스러기를 털어내는 건, 한 그릇의 수타면을 기다리는 재미였다.


수타면이란 말은 본디 수납면(手拉麵)에서 온 것이다. 손으로 면을 늘려 만든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은 발로 밟아 만드는 족답면이 있다. 밟는다는 뜻의 답(踏)이다. 흔히 족타면이라고 알려졌지만 조금 다르다. 이탈리아도 손으로 면을 만든다.

 

그러나 중국식 수타면처럼 오묘한 물리화학적 기술이 들어 있지는 않다. 그냥 달걀이나 물을 넣고 손으로 주무르고 밀대로 펴는 게 전부다. 수타면이 들고 치면서 공간에 입체적인 3차원을 만들어내는 데 비해, 이탈리아 파스타 면은 평면적이다.

 

한국에서 화교 요리가 잘 발달한 지역은 네 지역이다. 인천, 서울, 부산, 대구. 그 중에 대구는 화교 요리가 아주 보수적인 도시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지금도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대구 화교들이 펴낸 자료집을 보면, 수타면은 산둥성의 고유한 요리 기술이라고 한다.

 

 

“16세기 중국 책에 수타면은 산둥성 복산현에서 발명되었다. 처음에는 차면이라 하였고 그후 신면으로, 다시 수납면으로 불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 화교의 다수가 산둥성 출신인데, 특히 복산현 출신의 요리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이 손으로 면을 늘려서(拉) 만드는 면을 보고 이 땅의 사람들은 아주 신기해했을 것이다. 그 역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수타면의 기억을 남겨 놓고 있다. 그런데 요새 화교 중에 수타면 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수소문을 해도 ‘이제 손으로는 면을 안 만든다. 한 그릇에 5000원도 안되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10여분씩 면을 주무르면 적자’라는 대답이 다수다.

 

수타면은 아주 재미있는 실험실이기도 하다. 밀가루를 다루는 수많은 방법 중 빵과 함께 가장 물리화학적 기술이 잘 배합된 경우다. 면을 숙성시켜 늘리고, 소금을 비롯한 식품첨가물로 탄력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자연과학의 산물이다. 또한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손기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수타면의 가닥수가 불어나는 것을 보고 ‘2의 제곱’에 대해 학생들에게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대상이 되며, 소스와 면의 조화를 따져보는 음식조리학의 교과서가 될 때도 있다. 요새 어떤 중식당은 면을 손으로 뽑는 것은 고사하고, 기계로 돌릴 인력도 없어서 아예 면을 사다 쓴다고 한다. 값싼 배달로 연명하는 중식당의 현실을 볼 수 있는 서글픈 장면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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