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소녀, 여름 그리고 1994년

아이들은 눌러도 자란다. 사카구치 안고가 어떤 글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 구절이 떠오른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란다. 자란다, 그 얼마나 싱싱한 단어인가? 다 자라고 나면 하루하루가 죽음이다. 생장점이 다 닳고 나면 그 이후의 시간은 늙어가는 것이다. 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아이는 대단하다. 하루도 같은 하루가 없고, 알든 모르든 매일 조금씩 자라나고 있으니 말이다. 


윤가은 감독은 이런 아이들의 성장을 잘 보는 감독이다. 잘 보는 것, 정말이지 잘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미덕이다. 윤가은 감독은 지금까지 거듭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들을 만들곤 했는데, 모두 여름이 배경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여름인 게 우연만은 아닐 듯싶다. 모두 여름방학 동안의 이야기인데, 학교에 다니면서 대개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과 달리 방학 동안엔 아이들이 나름 개별적인 체험을 할 수밖에 없다. 물과 햇빛만 있으면 쑥쑥 자라는 식물들처럼 학교와 집 바깥의 공간에서 열기와 물기로 아이들은 식물처럼 쑥쑥 자란다. 즐길 수도 있다.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서사적 시공간이 겨울인 것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1994년, 성수대교 사건은 중2 소녀 은희의 삶을 침범한다. 영화 <벌새>의 한 장면.


아이들은 집 밖에서 더 많이 큰다. 윤가은 감독의 단편인 <콩나물>에서 아이는 인생 최초의 콩나물 심부름을 떠난다. 가는 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길을 물어가며 찾고, 집으로 되돌아오기까지, 사실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다. 올여름 개봉하는 <우리집>에서 아이는 콩나물 심부름보다는 좀 더 먼 곳을 다녀온다. 이사 가지 않고 ‘우리집’에 살고 싶은 아이와 매일 싸워서 꼭 이혼할 것만 같은 위기의 ‘우리집’을 지키고 싶은 아이, 두 아이가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 길을 떠나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올여름 개봉하는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에도 소녀들이 나온다. 주인공 소녀 은희는 조금 더 큰 나이, 15살, 중2 소녀다. 은희의 하루도 집에서 시작해, 학교와 학원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다. 은희의 성장 역시 대개 집 밖에서 이뤄진다. 몰래 남자친구와 입도 맞춰보고, 콜라텍에 가보기도 하고,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단짝 친구와 동네를 쏘다니며, 선생님이나 부모님, 늘 자신을 만만히 여기는 오빠들의 험담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중2쯤 되니, 가끔은 정말 마음을 알아주는 어른을 만나기도 하고, 부모님의 잔소리가 싫지만 견뎌야 한다는 것도 안다. 


<벌새>에 등장하는 중2 소녀는, 대치동에서 사는 아주 평범한 중산층 가정, 1남2녀 중 막내이다. 영화에서 보이는 소녀의 삶은 사실 하나도 특별할 게 없다. 남자친구와 입맞춘다거나 문방구에서 물건 훔치는 일 정도야 그 나이에 한 번쯤 해 보는, 그런 사소한 일탈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소녀가 갑자기 훌쩍 성장하게 되는 일이 생기는데, 그때야 갑자기 영화가 시작하던 순간, 사실 이게 현재의 중2 소녀 은희가 아니라 1994년에 중2였던 소녀의 이야기였음이 환기된다. 1994년, 그 해 우리를 강타했던 사건, 성수대교 사건이 소녀의 삶에 침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1994년엔 성수대교 사건이 있었다. 어떤 소녀가 ‘뽀리까기’도 하고 ‘입맞춤’도 하고, 학원 ‘땡땡이’도 치던 바로 그 1994년에, 배정을 멀리 받아 다리를 건너 학교에 가다 세상을 떠난 여고생들도 있었고, 대학생들도 있었을 테고, 어제까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도 있었을 테고, 그들은 누군가의 딸, 오빠, 동생, 부모였을 것이다. 소녀들은 쑥쑥 자라, 은희는 서른이 되었겠지만, 누군가는 영원히 1994년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잊고 이제는 쑥쑥 자라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늙어간다. 


또 한 편의 개봉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도 우연이지만 또 1994년을 소환한다. 이야기는 <유열의 음악앨범>이 첫 방송을 타던, 1994년 10월1일에 시작된다. 1975년생, 갓 스물이 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고, 안타깝게 엇갈리고, 애타게 그리워하다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정지우 감독은 특유의 미장센을 통해 빛나는 청춘과 연애를 낭만적 회고록으로 제공한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시작하던 날 만난 두 사람, 그런데 두 사람의 연애담에는 성수대교도 삼풍백화점 사고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냥 두 남녀의 안타까운 엇갈림과 애절한 그리움, 그리고 애처로운 순진함이 그려질 뿐이다. 


왜 시간이 지나면 지독한 사건들은 침전되고 순한 부유물만 말갛게 떠오르는 것일까? 기억의 재구성 속에서 1990년대의 두 연인은 너무도 순수하고 순결하게 묘사된다. <벌새>의 중2 소녀가 동년배 남학생과 입술도 부비고, 혀도 넣어 보는 1994년인데, 이상하리만치 <유열의 음악앨범> 속 스무 살들은 착하다 못해 거의 청교도적이리만치 순진하다. 그래서인지 이 두 사람의 공간에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같은 현실의 커다란 흉터가 등장할 틈이 없다. 두 사람만의 은밀하고 순결한 기억으로만 채워진다. 현실의 흉터는 취업이 어려웠던, IMF(외환위기), 초라해진 나의 이유로 잠깐 얼굴을 내밀 뿐이다. 


기억이란 어쩌면 무척 주관적이고 허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당대 유행했던 감성적 발라드들로 가득 찬 공간엔 정치, 사회의 기록이 거의 없다. 소문자로 쓰인 작은 기억들로 당대를 추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그게 어쩌면 로맨스라는 판타지의 공간일 테니까. 하지만 어쩌면 이는 사소하고 순결한 기억으로만 과거를 추억하고 싶은 욕망의 반영은 아닐까? 선택적 왜곡으로 재구성된 해마의 이기심, 아름다운 것만 남기고 괴로운 것은 지우는 이기적 기억 회로. 


완전히 다른 질감의 1994년을 만나는 것은 꽤나 흥미로우면서도 멀미 나는 일임에 분명하다. 추억도 살아남은 소녀들의 몫이니 말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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