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엑시트·타짜…그리고 ‘청춘’

<엑시트>는 용남이 대학 시절 익힌 클라이밍이라는 ‘무소용한 취미의 힘’을 통해 웃음을 준다.


김기영 감독·윤여정 주연의 1972년 영화 <충녀>에는 수미상관의 대사가 하나 있다. 영화의 첫 장면 학급에서 고급 시계 도난 의혹이 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담임 선생님은 “청춘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용기”라고 웅변한다. 급우들에게 시계를 훔쳤다는 혐의를 받았던, 아니 “취미로” 그것을 실제 훔쳤던 주인공 명자는 담임교사의 호명에 벌떡 일어나 다시 외친다. “청춘, 그것은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젊음의 용기!”라고 말이다.


이 대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한 번 더 반복된다. 부유한 유부남의 정부였던 명자는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자 했으나 이내 실패하고, 살해하기에 이른다. 경찰에 체포되기 직전, 명자는 2층집 난간에 서서 돌연 “청춘, 그것은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용기”라고 외치며 자해하고 몸을 던진다. 김기영 감독 영화 특유의 난해하고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괄호에 넣어둔다고 하더라도, 이 대사는 엉뚱하면서도 상징적이다. 과연, 명자가 도전하고 싶었던 기성세대는 무엇이며, 어찌 그 용기는 자살로 실현될 수밖에 없었을까? 군부독재, 초고속산업화, 혼돈의 1970년대를 떠올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2019년 추석 성수기 영화관은 조금 싱거운 결과를 남겼다. 대단한 흥행작도 없었고, 화제작이나 눈길을 끄는 작품도 없었다.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여름 성수기 영화였던 <엑시트>가 여전히 박스 오피스 상위권에 남아 추석 영화들과 나란히 경쟁했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엑시트>와 <타짜>의 주인공은 모두 취업준비생이다. 영화 장르의 차이를 고려한다 해도, 주인공의 현재 상황이나 형편의 유사성에 비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 대조적이다.


<엑시트>의 주인공 용남(조정석)은 집안의 구박덩어리이다. 말이 취준생이지 거듭 고배를 마신 그는, 잠정적 백수이다.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익힌 클라이밍은 그런 점에서 취업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소용 스펙에 불과하다. 심지어, 동네 놀이터에서 철봉에 매달려 클라이밍 실력을 보여주자 동네 꼬마 녀석들은 철봉에서 떨어져 죽은 여자 친구 때문에 미친 거라고 놀린다. 조카도 그런 그를 외면한다. 유머 코드이긴 했지만 백주에 놀이터에서 배회하는 성인 남자에 대한 통념을 비튼 웃음이었다.


하지만 영화 <엑시트>는 이 무소용의 취미가 결국 용남을 살려주는, 구원이 되는 반전을 통해 웃음과 위로를 선사한다. 심지어 용남은 자기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희생하고, 자기의 기술로 타인을 구해주기도 한다. 각자도생의 취업경쟁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던, 이력서에 한 줄 적기도 어려웠던 잔재주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가 세상에 도움을 주고,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방책이 되어 준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따진다면 용남은 흙수저에 가까워 보인다. 대개 평범한 가정은 거의 흙수저에 가까우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구하는 데 있어서는 그런 계층이나 계급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소용한 취미의 힘, <엑시트>는 이를 통해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다.


<타짜3: 원 아이드 잭>의 주인공 도일출(박정민) 역시 취준생이다. 그런데 일출은 공시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다. 말이 공시생이지 실상 카드 도박장 근처를 얼씬거리면서 점차 도박에 빠져드니, 도박꾼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 듯싶다. 그런데 그런 그가 도박이 중독이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내레이션한다. 흙수저, 금수저로 나뉘어서 출발선부터 다른 게임을 하는데, 오히려 똑같이 카드 7장 나눠 들고 덤비는 도박이 더 공정한 게임이라고 말이다.


오락성 짙은 상업영화로서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일출의 이 내레이션은 무척 위험한 자가당착을 품고 있다. 영화에서 도박이나 사기와 같은 범죄가 등장해서는 안된다는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도박이나 사기를 다루는 하이스트 무비는 오히려 철저히 범죄의 세계와 현실을 격리한다. <오션스> 시리즈가 월스트리트 시위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이고, 최동훈 감독의 <타짜>가 철저히 화투, 도박의 세계에 몰입해 오히려 그 안에서 세상살이의 아이러니와 척박함을 길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범죄를 오락영화로 즐길 때 범죄를 세상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게다가 7장 들고 하는 게임이니 훨씬 더 공정하다니. 이는 상대적 격차에 시달리느니 아예 불법과 폭력의 야만적 세계가 더 공평하다는 궤변에 가깝다. 아무리 불공정하다 해도 범죄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는 같은 규칙으로 운용되는 일원적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편에 비해 사회적 메시지를 많이 담았으나 도박의 잔혹함 속에서 어설픈 해피엔딩만 남은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욱더 곤란한 것은, 공무원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결실인 것처럼, 영화적 판타지로 묘사되고 있는 형편이다. 상시 구조조정의 공포를 피하고,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업으로서 공무원에 많은 청춘이 매달리는 것은 분명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이야기가, 허구가 이에 대한 반성적 질문이나 표현의 주저함 없이 많은 관객들이 원하니 영화적 판타지로 보답하겠다는 것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심지어 아무것도 남긴 것 없다고 원망했던 아버지가 어마어마한 유산도 남긴다. 물질적 보상 측면에서 이제 그는 금수저가 된 거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도박꾼들의 세계에서 짝귀 도성길의 아들 도일출이라는 사실이 대단한 혈통으로, 도박계의 보증서 역할, 금수저 인증서 역할을 해준다는 사실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도일출을 볼 때마다, 도성길, 짝귀 아들임을 인증하며 그의 목숨을 구해주고, 기회도 준다. 정작 도일출의 캐릭터 자체가 아버지의 이름 아래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가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사회적 모순을 그저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타짜>의 청춘보다 <엑시트>의 청춘이 더 설득력 있었던 이유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