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여배우의 눈빛

ㆍ한국 영화 ‘남성·범죄물’에 편중
ㆍ팍팍하고 고단한 현실의 삶 반영
ㆍ주연상 화제 ‘한공주’의 천우희
ㆍ피하고 싶은 진실을 닮은 눈빛


‘천우희’가 며칠째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수상이 놀랍다기보다는 천우희가 수상 시에 보여주었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화장이 다 지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그녀는 울었다. 예상하지 못했다며 울었고, 작은 영화의 주인공에게 큰 상을 주다니 고맙다며 울었다. 그런 그녀의 눈물이 여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인간 천우희의 고백으로 다가왔다. 천우희가 화제가 된 건 그 진심이 통해서였을 것이다.

2014년 영화계를 돌이켜 보았을 때, 천우희 외에 누가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했을까 싶다. 한편 여성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무척 드물었다는 의미이다. 올 한 해 여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인 영화들을 꼽아 보자면 그렇게 많지 않다. 기억력에만 의존하자면, <한공주>, <수상한 그녀> 등이 떠오른다. 기록을 찾아보면 몇 편 더 추려낼 수 있다. <관능의 법칙>, <조선미녀 삼총사>, <우아한 거짓말> 등의 작품이 여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자면 2014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는 219편에 이른다. 하지만 219편 중 여자 주인공의 호연으로 기억 남는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흥행 순위별로 나열했을 때 최고 흥행작 10편 중 여배우들이 주연급으로 활약한 영화의 숫자도 상대적으로 적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 <수상한 그녀> 정도에 불과하다. <신의 한 수>, <군도: 민란의 시대>, <끝까지 간다>, <표적>처럼 강인한 남성들이 등장하는 남성 영화가 한국 영화를 주도했다. 문제적인 것은 이런 현상이 비단 올해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계 전반에, 여배우들의 진가를 볼 수 있는, 여배우 영화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상징적이다. 우리의 삶은 남성과 여성이 분리된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영화 속 세계는 남성들이 중심이 된다. 엄밀히 말해서, 남성이라기보다는 범죄와 그 주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듯싶다. 주변에 형사로 일하거나 범죄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개 조직범죄에 몸담거나 그 범죄를 뒤쫓는 경찰인 경우가 많다.

범죄물들이 다루는 것은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악마적 본성 그리고 이기심이나 욕망이다. 거친 남성들이 등장하는 범죄물은 어떤 점에서 우리가 공감하고 있는 현실의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미생>에서 화제가 된 대사, “회사가 전쟁터라면, 이 밖은 지옥이야”라는 말에 공감하듯이, 범죄가 넘쳐나는 스크린에 심정적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배우 천우희에세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겨준 영화 <한공주> 포스터


영화가 세상의 거울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극악무도한 남성적 지배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암묵적 동의일 테다. 우리의 일상이 범죄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범죄와 악으로 채워진 영화적 서사가 우리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거꾸로 말해, 점점 더 삶이 팍팍하고 고단해질수록, 영화적으로 표현된 삶 역시 폭력적이며 거칠어진다.

다시 여배우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면, 한국 영화의 1970년대, 1980년대는 여배우의 전성기로 기억된다. 트로이카라는 말이 탄생했었고, 각기 차별화된 이미지의 여배우들이 스크린을 장악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사적으로 돌아보자면, 당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기, 남성에게 유린당하고 달라진 도시 문명 속에서 희생되었던 여성들은 주인공이긴 했으나 주체는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19세기의 문제적 소설 <테스>나 <안나 카레니나>, <마담 보봐리>는 모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녀들은 1800년대 중후반, 달라지는 당대의 사회상을 그녀들의 성장, 연애, 결혼, 죽음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녀들은 당대적 삶을 살아간 인물이자 피해자였으며 격동하던 시대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적어도 19세기의 삶은 여성을 통해 더 많은 부분을 보여줄 수 있었다.

영화를 산업적으로 접근했을 때, 여배우는 손익계산을 위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변수에 남성 배우를 넣느냐 여성 배우를 기입하느냐에 따라 예상되는 이익의 지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예상 수익의 결과물로 우리는 여배우가 거의 없는 영화들을 만나고 있다. 강렬한 남성 영화라는 게, 한국 영화 시장이 덜 위험한 수익 창출 모델로 선택한 안전한 서사 모델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천우희가 주연을 맡았던 <한공주>는 계산에 위배된 작품임에 분명하다. 우선 여성 주인공이 혼자 영화를 이끌어 간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상업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그녀가 주연을 맡았던 배역, 한공주라는 캐릭터가 상업적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불편하다.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보고나면, 우리는 모두 다 가해자임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 공주는 누구를 비난하지도 그렇다고 판타지 영화처럼 복수를 노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 지옥 같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용한 무관심일 뿐이다.

말하자면, <한공주>는 우리가 그다지 마주 보고 싶지 않은 우리의 맨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여배우 천우희는 ‘공주’의 맨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녀, 공주가 스크린을 너머 우리를 바라볼 때, 눈빛이 담은 청결한 질문 때문에 우리는 불편해진다. 그러니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눈빛, 그 눈빛이 바로 여우주연상 감의 눈빛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달콤한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정말 피하고 싶은 진실을 담은 눈빛. 그 눈빛이 바로 여배우의 눈빛이다.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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