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트렌드 by 트렌드

요즘 넥타이부대가 어딨니?… 남성 출근복, IT기업·공무원 ‘노 타이’ 바람 타고 정장서 캐주얼로

제일모직이 운영하는 삼성패션연구소는 해마다 흥미로운 통계를 낸다. 서울 삼성동과 시청앞, 여의도 등 사무실이 모여 있는 주요 거점에서 출근하는 남성들의 복장을 체크해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 연구소가 지난 5월 길거리에서 남성 2000여명의 출근복을 확인한 결과 58.6%가 캐주얼 복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장을 입은 직장인은 41.4%에 그쳤다. 1990년대 70%가 넘는 남성 직장인들이 정장을 착용했던 것에서 확연히 달라진 풍경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넥타이가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정장 차림이 부쩍 줄어들더니 이젠 오히려 넥타이를 맨 이들이 왠지 어색해 보인다. 정장을 입더라도 색상이 짙은 옷에 한정되지 않으며, 셔츠 색상도 흰색 일변도에서 탈피했다. 이는 일부 대기업과 공공기관 복장 코드의 영향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더 나아가 군대식 문화가 사라지고 정보기술(IT) 관련 산업이 발전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진 _ LG패션 제공(출처 ;경향DB)



■ 삼성 복장 변경에 정장 ‘KO’


삼성그룹은 2008년 근무복장으로 ‘비즈니스 캐주얼’을 전격 도입했다. 삼성이 발표한 ‘비즈니스 캐주얼 착복기준’은 “칼라가 있는 재킷, 칼라가 있는 캐주얼한 드레스셔츠, 정장류 하의, 구두 스타일의 캐주얼한 슈즈”였고, 피해야 할 복장은 “T셔츠, 청바지, 면바지, 운동화 등”으로 적시했다. 이전에도 몇몇 기업이 이런 복장을 도입했지만 공식 도입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변화를 유도한 건 삼성이 처음이었다. 


이후 이 복장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2년여 만인 2011년 5월 삼성패션연구소의 ‘도심 길거리 조사’에서 캐주얼이 정장을 처음 앞섰다. 


삼성 관계자는 18일 “한마디로 삼성그룹의 복장 변경으로 한국 직장인의 복장이 ‘짙은 정장과 넥타이’에서 ‘노 타이 셔츠와 재킷’으로 바뀌었다”며 “당시엔 이 정도 파급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치 못했는데 우리도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 


복장 간소화는 사실 삼성만이 아니라 삼성으로 상징되는 IT기업의 득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이 비즈니스 캐주얼을 도입하기 전 이미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 HP, 필립스, 노키아 등이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고 있었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은 아예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캐주얼 복장을 도입한 상태였다. 이런 기업들이 국내에 진출하고 또 한국 기업들과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게 된 측면이 있다. 이들은 왜 자율복장을 시도했을까.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천편일률적인 복장에서 벗어나 개성있는 셔츠를 입으면 직원 개인의 다양성이 좀 더 자연스럽게 발휘될 수 있다는 경영상의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실제 IT업계, 특히 게임업체는 극단적일 정도로 자유로운 복장으로 근무한다. 게임업체 넥슨 관계자는 “밤샘 개발에 몰두하는 게임 개발자들이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일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됐다”며 “여직원들도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등 자신이 원하는 복장으로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IT산업 비중이 점차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율복장 문화가 확산됐고, 규모와 영향력이 큰 삼성의 전환이 ‘결정타’ 역할을 한 셈이다. 


■ 넥타이 확인사살 ‘전력대란’


정장과 셔츠를 입더라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경우가 확연히 늘어난 것에는 정부의 ‘노 타이’ 지침도 한몫했다. 정부는 냉방에 소비되는 전기를 절약하는 차원에서 넥타이를 풀 것을 권장해왔고, 2005년 행정자치부의 ‘강력 권고’가 나오면서 ‘여름복장=노 타이’가 공식처럼 굳어졌다. 넥타이만 풀어도 체감온도가 2도가량 떨어지고 냉방비 또한 크게 절약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최근엔 여름이 아니더라도 넥타이를 매지 않는 일터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휘들옷’이라 불리는 쿨비즈를 개발해 공무원들에게도 권장한 게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많다. 


공무원 복장 변화는 최근 전력대란과 무관치 않다. 2011년 9월 초유의 순환단전 사태가 벌어지는 등 꼭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늘 전력이 부족한 현실이 작용하면서, 실내 근무자들이 넥타이를 착용하면 오히려 에너지 문제에 둔감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휘들옷은 이듬해 1월부터 정부 주도로 개발됐다. 기존 와이셔츠뿐 아니라 가벼운 캐주얼 셔츠와 재킷 등을 권장하는 개념이어서 민간기업의 비즈니스 캐주얼에 근접한 자율복장으로 평가된다. 홍석우 당시 지경부 장관이 국무회의 등에도 이 복장으로 참석하면서 민간에 적잖은 영향을 줬다. 


일례로 보수적인 복장 관행을 유지해온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여름 이후 사계절 내내 넥타이를 풀고 다닌다. 김연강 대한상의 총무팀장은 “지난해 여름 지경부가 여름 복장 ‘드라이브’를 건 뒤 내부적으로 여름이 아니어도 넥타이를 하지 않는 복장을 권장하게 됐다”며 “경제단체와 민간 기업도 정부 시책에 적극 협조하는 차원에서 이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복장이 간편해진 뒤 직장인들은 “사내 서열문화가 완화되고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게 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다. 반면 일각에서는 “옷차림에 신경쓰게 되거나 (옷을 사는)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는 반론도 내놓는다. 


■ “탈권위 반영”…금융가 정장 여전


삼성과 정부 등 민·관의 대표적인 일터의 복장 간소화 영향도 있지만, 직장인들의 ‘캐주얼화’는 사회 전반의 변화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탈권위 바람이 확산되면서 유니폼 내지 천편일률적 정장 등에서 개성있는 옷차림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우찬 패션칼럼니스트는 “획일적인 군사적 문화가 깨지면서 ‘남녀 직원들은 이러이러한 복장을 각각 착용해야 한다’는 인식에 큰 변화가 왔다”며 “개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보수적인 패션에서 벗어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탈권위를 내세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이런 변화가 가시화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통 정장 차림을 유지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은행이나 증권사, 법조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셔츠 색상이 다양해지는 등 일부 영향은 있지만 여전히 정장과 넥타이 차림을 유지하고 있는데, 금융거래를 다루는 직업 특성상 고객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자동차 등 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업종도 비슷한 이유에서 정장을 선호한다. 현대·기아자동차 직원들은 대체로 정장 차림을 유지한다. 이는 외국 자동차 브랜드의 한국지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한국닛산 등 일부 외국계 회사가 매주 금요일 청바지를 허용하지만 아직은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 


정장 수트야말로 성공과 권위를 상징하기 때문에 이를 유지한다는 시선도 있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대부분 회사원들의 복장이 간편해지면서 짙은색 정장과 넥타이, 단정한 헤어스타일 등이 차별화된 ‘엘리트 직종’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며 “세상이 변해도 우리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부심도 없지 않다”고 분석했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 5년 새 넥타이 판매 27% 감소… 캐주얼 액세서리·백팩이 대세


정장보다는 캐주얼 복장을 찾는 직장인이 늘면서 유통업계와 패션업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넥타이 대신 남성용 잡화와 캐주얼 브랜드가 더 다양해지고 있는가 하면 기존 정장 브랜드도 스타일과 편안함을 강조한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자료를 보면 이 백화점의 지난해 전체 넥타이 매출은 전년보다 10.8% 감소했다. 최근 5년 동안 두 자릿수 이상의 감소율을 보인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2008년 매출과 비교하면 27.3% 감소했다. 캐주얼 복장 근무를 허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데다 정장도 넥타이를 매는 기존 스타일에서 청바지에 재킷만 입는 방식의 ‘세미 정장’이 인기를 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넥타이 소비가 줄어들면서 최근 업계에서 주목하는 분야는 벨트, 지갑, 스카프 등 남성용 잡화다. 현대백화점의 남성용 잡화 매출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고 지난해엔 36.3% 증가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은 지난 5월 새롭게 문을 연 남성 전문관 ‘현대 멘즈’ 내에 국내 최대 규모의 남성 잡화·액세서리 매장을 열었다. 495.9㎡ 규모의 매장에서는 남성용 신발과 액세서리뿐 아니라 화장품과 소형 가전제품까지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도 각각 2011년과 지난해 서울 강남점과 본점에 남성 전문관을 만들어 패션에 관심있는 남성 고객을 잡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의류업체도 남성용 캐주얼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LG패션의 남성복 브랜드인 ‘마에스트로’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정장과 캐주얼 상품 구성비가 6 대 4였지만 올해는 4 대 6으로 비중이 역전됐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이탈리아 남성들의 캐주얼 복장을 콘셉트로 하는 ‘일 꼬르소 델 마에스트로’도 출시해 사내 남성복 중 캐주얼 상품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닥스액세서리’의 백팩(배낭)은 2011년 이후 올해까지 매년 2배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정승기 LG패션 액세서리 부문장(상무)은 “남성들이 이탈리아 등 패션 선진국 남성 패션에 영향을 받아 몸에 꼭 맞는 슬림한 핏의 옷을 찾기 시작하면서 정장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지갑 대신 클러치백이나 백팩 등 대체 아이템이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남성용 정장 수요가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제일모직의 남성복 브랜드 ‘로가디스’가 최근 만 26~45세의 직장인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정장을 주 5회 이상 착용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4.2%를 차지했다. 착용 이유로는 사내 복장 규정과 분위기(29%), 비즈니스 미팅과 발표(21%) 등이 꼽혔다.


로가디스 관계자는 “편안함과 스타일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 자주 정장을 입겠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6.6%에 이른다”며 “파워네트(폴리우레탄 등이 사용돼 신축성이 강한 직물)를 사용해 활동성과 편안함을 높인 ‘스마트 슈트’로 정장을 찾는 소비자를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