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음식배달앱

우스갯소리로 음식 배달이 성한 건 우리가 ‘배달의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랬다. 사건사고를 다루는 사회면에 배달 음식값으로 시비가 붙어 배달원이 폭력죄로 잡혔다는 일제강점기 신문기사도 있다. 냉면배달원들이 집단으로 조합을 만들어 쟁의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전하고 있다. 굳이 여러 문헌을 뒤지지 않아도 소설에도 나온다. 서울의 1930년대 모습이 살아 있는 박태원의 <천변풍경>이 그것인데, 배달하는 음식의 풍경이 등장한다.

인천의 자장면 박물관에는 각기 다른 소재로 만든 배달통이 진열되어 있다. 나무로 시작해서 알루미늄 제품까지 변천사를 볼 수 있다. 특히 경량화시킨 알루미늄 배달통이 개발되면서 한국의 배달음식업이 크게 성장했다는 말도 있다. 요즘은 플라스틱 제품은 물론, 속에서 보온재를 댄 콤팩트한 제품도 나오고 있다. ‘배달 알바’ 모집광고를 보면 ‘원동기면허 소지자’로 지원자격을 못박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배달용으로 팔리는 모터사이클 시장도 규모가 있을 것이 틀림없다. 길에 다니는 ‘오토바이’의 팔할이 배달용이라면 과장일까. 한국의 배달음식 시장이 워낙 크다보니 관련 산업도 함께 성장한 셈이다.

‘번개’라는 애칭의 배달원은 나중에 인기 강사로 텔레비전에도 등장했다. “짜장면 시키신 분~”이라는 광고 한 편으로 이창명이란 인기 연예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요즘도 배달시장에서 배달원의 능력이 식당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시루떡처럼 켜켜로 머리에 음식쟁반을 이고 다니는 아주머니 배달원을 볼 수 있다. 인기 프로그램에 ‘생활의 달인’으로 소개되고 해외토픽으로 외국 언론에 소개될 정도다. 배달 없는 한국 음식과 식당 시장은 상상도 할 수 없다.

피자의 원조인 이탈리아에는 배달문화가 없다. 대체로 얇고 바삭하게 만드는 이탈리아식 피자는 시간이 흐르면 딱딱해서 먹을 수 없게 된다. 반면 한국에서 인기 있는 배달용 피자는 배달 후 먹어도 맛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두껍고 촉촉하게 굽기 때문이다. 자장면이 노란색을 띠는 건 계란이 들어서가 아니라 면 개량제 때문인데, 배달 후에도 면이 퍼지지 않고 쫄깃함을 유지해주는 까닭이다. 플라스틱 랩 사용량도 한국이 아주 큰 시장인데, 역시 배달음식의 영향이 크다. 랩이 없었으면, 지금도 자장면 배달원은 주전자에 짬뽕 국물을 따로 담아서 다니고 있을 것이다. 배달문화가 음식의 성격과 산업구조까지 바꾸어 놓은 셈이다.


최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배달앱도 등장했다. 일간지에 전면광고는 물론, 텔레비전 광고도 하고 있다. 전망 있는 산업이라고 보이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각종 캐피털회사들이 이 배달전문 앱 회사에 자금을 투자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어디서 수입을 내는가 했더니 이 앱을 써서 주문을 하면, 수수료를 받는 형식이다. 영세한 식당에서 코 묻은 돈 받는다고 비난이 나오기도 한다. 수수료만큼 음식 양이 줄거나 질이 나빠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인터넷 글도 많다. 장점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광고해야 하는 영세업소들의 일손을 덜어준다는 얘기다.

사정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겠지만, 참 한국이란 대단한 배달왕국인 셈이다. 그나저나 이제는 장난주문전화로 울상 짓는 일은 없어지려나 모르겠다. 스마트폰은 모든 것을 기억하니까.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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