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가을 꽃게

꽃게 금어기가 풀렸다. 기다렸다는 듯 신문에 기사가 쏟아진다. 가을꽃게, 실하고 맛있단다. 값도 좋다는데, 정작 시장에서는 물건 보기가 어렵다. 업계에서 들으니 마트들이 싹쓸이를 해서 일반 시중에 물건이 별로 풀리지 못한다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주요 마트는 꽃게를 놓고 심하게 경쟁을 하고 있다. 이른바 미끼상품이다. 작은 것이라도 ㎏당 8000원이라면, 도매시장보다 싸다. 마트가 도매시장까지 위협할 줄이야! 역사적인 종로 육의전 이후 이어온 장마당의 역사는 침통하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 서운함이란! 시장에서 크고 자란 우리들의 아쉬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도 가을에 꽃게 한 점, 내 입에 들어오겠지 기대는 하고 있다. 꽃게는 서울에서 만만한 해물이 아니었다. 주로 서해안에서 잡고 소비했다. 어로 기술이 좋아지면서 1980년대부터 싼값에 서울에도 풀렸다고 한다. 알 밴 암놈은 비싸니 봄보다 가을이 좋았다. 수게가 무진장 잡혀서 시장이 ‘게판’이었다. 시장 입구에 리어카 통째로 톱밥을 그득 담아놓고 게를 풀어서 팔던 기억도 난다. 게가 떼로 도망쳐서 과일가게 좌판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흔전만전이었다. 어머니는 그걸 찌고 무쳤다. 게를 차곡차곡 찜통에 쌓고 불을 넣어서 발그레지면 발라 먹었다. 맛있는 속살을 먹자면 역시 쉬이 되는 게 없다. 게살을 파내려다 상처 입는 게 당연했다. 게딱지에 긁힌 주둥이가 쓰려도 그 단맛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좀 작은 건 양념을 맵게 해서 무쳤다. 화끈거리는 뒷맛처럼 오래도록 게의 진한 맛이 남았다. 비싼 대게에 킹크랩은 물론이고, 사촌 격인 수입 랍스터까지 마트에 쫙 깔리는 시대에 ‘니들이 게 맛을 알어?’라는 말은 공허하다. 그래도 철마다 어김없이 잡히는 꽃게를 먹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게 맛을 안다고 할 것인지. 포실한 살점을 발라내 입에 넣으면 녹듯이 사라지는 게살의 촉촉한 밀도를 아직 우리 혀가 기억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다닌 시장은 염천시장이었다. 서울역에서 다리 건너 구둣골목 지나 약현성당 밑으로 길게 이어진 시장이었다. 서울 중심가에 사람들이 많이 살던 시절에는 시내에서 손꼽는 대형시장이었다고 한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전신인 경성수산시장이 있었을 만큼 규모가 있었다. 점차 몰락해 지금은 새벽에 약간의 난전이 벌어지는 정도로만 남아 있다. 여전히 서울에서 물건 값이 가장 싼 도매시장으로 통한다. 중림동은 언덕 위로 서민들이 많이 살아서 이 시장의 배후지로 기능했다. 나중에 사진기자 김기찬이 <골목안 풍경>을 펴내 이 동네의 인물과 풍경을 기록해 놓았다. 사진집으로나마 이 동네의 역사를 엿볼 수 있어 다행이랄까. 대낮에 중림동을 들른다. 혹시라도 게를 살 수 있을까, 어슬렁거려 본다. 새벽이 아니면 도매장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아직 이 시장의 옛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옹색한 골목 안에 있는 설렁탕집에 가서 고릿한 맛의 탕국에 소주 한 잔을 걸친다. 꽃게가 오는 걸 보니, 그렇다. 가을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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