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수도의 행보 ‘시커먼 빵 한 조각’

이탈리아에 있던 시절 한 수도원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과연 가톨릭 수도원에서는 어떻게 식사하는지 궁금했다. 농담 섞어 말하면, 이탈리아 교도소나 군대에서도 스파게티를 줄까? 이런 궁금증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코스를 갖춰 제대로 먹는 걸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니, 신부나 수도사들도 그렇게 먹을까, 이런 의문도 있었다. 도 닦는 분들이므로 우리의 선방처럼 검박한 식사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막상 식사가 나오는데, 제법 양이 많았다. 요리는 소박했지만 국물요리 대신 와인을 마시는 그들의 풍습대로 술도 곁들여 나왔다. 선방은 육식금지이므로 당연히 고기가 나오지 않는데, 비슷한 수도사들이 고기가 충분한 식사를 하는 것도 이채로웠다. 불교를 아는 동양인의 시각으로 그들의 식사는 ‘검박’한 소식이 아니라 좀 부자나라다운 풍요로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수도원 구석을 돌아다니는데, 음식냄새가 풍겨서 들여다보았다. 놀랍게도 맨발에 오직 겉옷 한 장만 걸친 일군의 수도사들이 시커먼 빵 한 조각과 묽은 수프 한 그릇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무탁자 위에 놓인 오래된 그릇은 수수했지만 그들의 영혼처럼 빛났다. 알고 보니 일반적인 식사를 하는 분들은 일종의 행정을 보는 신부님들이었다. 그러니까 늘 먹는 일상식의 식탁이 있었고, 거기에 나도 앉아서 수도원 식사를 먹었던 것이다. 반면 오직 도에 정진하던 수도사들의 식사는 마치 고흐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을 연상시켰다.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 그들의 모습이 세상의 모든 명예와 일상의 안식을 스스로 버린 수도사의 상징으로 느껴지는 건 자연스러웠다.

교황이 오셨다. 한때 반란군의 탱크가 진주했고, 민주와 저항의 함성으로 가득 차기도 했던 영욕의 성지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하신다. 우리는 이미 이번 교황이 어떤 분인지 뉴스를 통해 들었다. 성자라면 아마도 이런 분이 아닐까, 하는 여러 가지 증거도 읽었다. 시복식이란 듣기에 목숨을 걸고 영예롭게 죽어간 순교자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행사로 알고 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세월호 유족들이 목숨 건 단식을 하고 있다. 이미 교황께서도 이 사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는 소식이다. 소외된 자들의 구휼과 지원을 종교인의 중요한 덕목으로 보는 교황이 어떤 행보를 펼칠지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단식은 정치적 약자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최후의 저항이다.


세월호 사건은 합당한 조사와 처벌, 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지 않는 한 영원히 침몰 중일 수밖에 없다. 그 규명을 위해 유가족들이 곡기를 끊었다. 거친 음식을 통해 수도의 길에 맨발로 뚜벅뚜벅 걸어가던, 이탈리아에서 목도한 수도사들의 모습이 교황에게 겹쳐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광화문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보게 하는 시간이다. 유가족들이 다시 따뜻한 삶의 밥을 들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밖에 무엇이 있을까.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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