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

진짜 사나이

초록이 넘쳐나는 6월이면 한국전쟁의 상흔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 계절에는 잊고 지내던 군가들이 생각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 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 적에/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진짜 사나이’는 1962년 발표된 노래로, 육군본부 정훈국의 의뢰를 받은 작사가 유호가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이흥렬이 곡을 붙였다. 요즘엔 군대에서 잘 부르지 않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군 안팎에서 불러왔던 곡이다.

 

드라마 작가, 작사가, 신문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유호 선생(1921~2019)은 ‘신라의 달밤’ ‘이별의 부산정거장’ ‘맨발의 청춘’ ‘님은 먼 곳에’ 등의 가사도 썼다. 그가 군가와 인연을 맺은 건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시절이던 1950년 10월, 서울 수복 직후였다. 명동에 막걸리 한잔하러 나갔다가 작곡가 박시춘을 만났다. 그와 통음을 한 뒤 함께 밤을 새우며 완성한 군가가 ‘전우여 잘 자라’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

 

총 4절의 이 노래는 북진 중에 불리다가 1·4후퇴 무렵에는 금지곡이 됐다. 가사 중에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가 부정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군대 경험이 있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 가장 감동적인 군가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 마음’이다. 고된 훈련 중간의 휴식 시간에 조교들이 “노래 일발 장전”을 외치며 이 노래를 시켰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에 이르면 모든 훈련병들이 통곡을 했다. 그야말로 모든 사나이를 울리던 노래였다.

 

오광수 시인·대중음악평론가

 


 

오피니언 최신기사 - 경향신문

경향신문 > 오피니언 > 최신기사 [우리말 산책]‘따라지’는 있어도 ‘싸가지’는 없다 존 F 케네디는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전쟁

news.khan.co.kr

'노래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연못  (0) 2021.06.21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0) 2021.06.14
막걸리 한 잔  (0) 2021.05.31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0) 2021.05.24
4월과 5월  (0) 202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