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카공족

이른바 카공족이란 말이 회자된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본디 카페는 토론의 장소로 유럽에서 성장했다. 유럽의 민주주의와 철학의 발전은 카페의 몫이 컸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는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종종 심각한 논쟁을 유발한다. 카페의 수익 문제, 손님 윤리(?) 문제가 거론된다. 카페가 공부뿐 아니라 회의와 작업실의 기능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공유 사무실이 유행하는 것처럼, 최근에는 혼자 일하고 움직이는 프리랜서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의 전통적인 카테고리가 무너졌다는 의미도 된다.



먼저 장사하는 카페 주인들의 고통을 들여다보자. 내가 종종 가는 한 카페 주인은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는 옷을 입고 출근한다고 한다. ‘알바생’처럼 어려 보이는 사람이 카운터를 지키면 카공족의 ‘체류시간’이 길어진다고 믿고 있다.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자리를 점유한다는 뜻이다. 카페 주인이 카운터를 지키면 체류시간이 짧아지거나 최소한 음료나 케이크 추가 구매로 좌석 점유의 대가를 치른다고 말한다. 카공족들이 스스로 장시간 좌석 점유의 도덕적 부담을 알고 있다는 해석이다. 가장 성공한 커피 브랜드 중 한 곳은 장시간 체류로 이익이 줄어드는 문제를 사내에서 심각하게 논의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브랜드는 ‘무게 있는’ 오너나 점장이 카페를 지키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성업하는 것처럼 보여도 좌석 장시간 점유율이 높아 이익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카페 업주나 운영회사에선 전원 콘센트를 제공하지 않거나, 좌석 스타일을 장시간 머물기 어려운 재질과 형태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다. 먹고살자면 참 별일이 다 생긴다. 이걸 단순히 업주와 카페 이용객 사이의 눈치싸움 정도로 보는 건 물론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태도다. 카페, 카페 창업, 청년 실업과 취업 포기, 경쟁, 부동산…. 이런 키워드들이 얽혀 있다. 


어쨌든 카페 업주들은 몇 가지 ‘참을 수 없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하나는 문 열자마자 자리를 차지하고, 심지어 중간에 짐 놔두고 점심까지 먹고 오는 행위다. 이래서야 견뎌낼 카페가 어디 있겠나. 또 하나는 장시간 점유 시 추가 구매라도 해주는 성의를 요구한다. 마지막으로는 4인 테이블은 최소한 단독 사용을 피해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이것도 룰이 딱 정해져 있지 않고, 시행하려고 해도 경쟁 치열한 카페 업종에서 방울을 먼저 달려고 나설 업주가 누가 있겠는가. 카페의 공급이 과잉인 지금 시대에서는 더구나 이런 요구는 언감생심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틈에 신업종이 나오고 있다. 카페 형태의 공부방이다. 이들은 커피가 아니라 좌석을 판다. 그러나 이 업종은 큰 면적이 필요하다. 영세하고 작은 카페들과는 본질부터 다르다. 카공족 문제를 개인의 윤리에 호소하는 것은 초점이 틀렸다는 주장도 있다. 젊은 세대의 취업과 생존의 문제, 이들에게 공부할 공간의 부재 등을 선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커피 한잔은 일찍이 휴식과 평화의 상징이었다. 이제 우리는 다른 곤란을 보고 의논해야 하는 시대를 산다. 괴롭고 슬픈 시대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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